청주지법 "표현의 자유 넘어선 공무원 정치활동" 유죄 선고
전교조 충북지부 "정치적 결정" 항소 밝혀…"상위법 무시도"

<TIP>시국선언이란? 현재 당면한 국내외 정세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 교수나 재야인사, 종교인들이 해결을 촉구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 우리나라에선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시국선언문 발표가 자주 있었다. 시국선언문은 발표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교수나 재야, 종교계 인사들이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과 호응을 불러 일으켜 집권세력에겐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제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분출할 때에 대학교수들의 시국 선언문 발표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는 1960∼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와 인권을 탄압할 때에도 시국선언은 이어져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힘이 집결되고 독재정권에게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시국선언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압박수사, 4대강 정비 사업, 언론장악, 세종시 수정 등 현 정부의 독단을 우려한 교수, 재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진바 있다.

▲ 남성수 전교조 충북지부장이 9일 오전 공무원의 집단적 정치활동이란 이유로 시국선언을 주도한 간부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자 항소할 뜻을 밝히고 있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교사들에 대한 잇단 판결이 엇갈리면서 다시금 사법 신뢰성 논란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청주지법은 최근 판결에서 지난해 6∼7월 1·2차에 걸쳐 시국선을 주도한 (국가공무원법위반등)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교조 충북지부 간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한마디로 헌법이 보장한 교사 개인의 신념과 소신에 따른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노조차원의 집단적 활동은 국가공무원법 56조와 교원노조법 3조의 정치활동규제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논술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비판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교사란 직업의 특성상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충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국가정책에 반(反)해 공익을 훼손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청주지법 형사 3단독 하태헌 판사는 9일 지난해 시국선언을 주도한 (국가공무원법위반 등)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교조 충북지부장 남성수(51)씨와 전 사무처장 김광술(39)씨에게 각각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또 병합심리로 이뤄진 전교조 수석지부장 김명희(45)씨에게도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김 씨는 같은 혐의로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 된 뒤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해 이날 병합선고를 받았다. 이날 하 판사는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은 공익에 반(反)하는가이다"며 "교원노조법 3조와 국가공무원법 65조가 교사의 정치활동을 규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 판결에서 논술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충분한 비판능력을 갖추고 있고 자칫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손해라는 시각을 갖게 되어 반(反)교육적이란 시각에서 공무원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사의 신분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의 교육권을 충분히 침해할 수 있다"고 유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법원, “공무원 정치활동 관련법 위반”
하지만 전교조 충북지부 남성수 지부장은 곧바로 항소할 뜻을 밝혔다. 남 지부장은 "충북교육청과 교과부가 현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어 정치적으로 판결한 결과이다"며 "모든 시국선언은 집단적으로 이뤄지며 개인의 신념과 소신이 모아져 모든 의사표출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망각하고 하위법인 국가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을 적용한 법 해석으로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사실 시국선언을 주도한 교사들에 대한 전국 지방법원의 판단은 그동안 유·무죄가 2대2로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워 왔다. 일단 이번 청주지법의 판결로 균형감은 깨졌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교사 개인의 표현의 자유 보다 하위법인 국가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에 명시된 교육공무원의 정치활동 규제란 잣대를 들이대어 유죄를 선고한 것과 관련해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국선언과 관련해 지난 1월 전주지법이 무죄, 지난 달 인천지법은 유죄, 같은 달 대전지법 홍성지원과 대전지법에선 각각 유죄와 무죄를 선고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교육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판단기준이 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양극단으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사법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대전지법 김동현 판사는 "시국선언이 특정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한 것이 아니므로 정치적 중립의무에 반하지 않는다"며 전교조 대전지부 간부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반면에 대전지법 홍성지원 조병구 판사는 "특정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정부의 정책결정 및 집행을 저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른 정치세력, 사회 집단과 연계한 행위는 법에 금지된 행동이다"라며 전교조 충남지부 간부 3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교조 “교사 개인 신념 모았을 뿐”

▲ 지난해 6-7월 이어진 충북 시민사회단체 시국선언.
똑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김 판사의 판결은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셈이다. 김 판사는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선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갖고 직무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며 "지난해 시국선언은 특정 정당이나 개인을 지지하거나 또는 반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가 아니었다. 따라서 공익에 반하는 목적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공무원도 정부정책을 비판할 권리가 있고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폭넓게 허용하지 않으면 정부가 오류를 스스로 바로잡을 기회가 사라진다"며 "비판을 보장하는 게 공익을 증진시키는 길이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이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이나 정치적 활동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선을 명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성을 띤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다보면 처벌 범위가 확대되어 실정법의 한계에 부딪힌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판사는 "작금의 학생들은 인터넷이 발달해 무한한 정보를 획득하고 논술교육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키워온 만큼 일부 교사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며 "정부정책을 비판한 피고인들을 처벌하면 오히려 학생들이 '힘 있는 자에게 대한 비판이 손해를 가져 온다'는 그릇된 시각을 갖게 되어 처벌하는 자체가 반교육적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서울중앙지법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교조·전공노 시국선언 사건에 대해 형사 단독 판사 대신 올해 새로 구성한 재정합의부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기도 하다. 청주지법 손천우 공보판사는 "선고공판이라 별도 합의 재판부 구성은 생각하지 않았다"며 "다툼이 있는 만큼 항소심 합의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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