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없이 반복된 기계식 문제풀이… 초등생 문화·인성교육은 '뒷전'
도교육청 학업성취도 1위 자화자찬… 교사들 '공교육 사교육화' 우려

▲ 교과부의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충북이 상위권을 기록했다. 1년 만에 꼴찌에서 최상위로 올라선데 대해 일선교사들 사이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전락시킨 결과’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쟁교육이 낳은 최상위 성적>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를 기록한 충북 교육에 대해 일선 교사들 사이 우려의 목소리가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전국 꼴찌를 달리던 저조한 성적이 크게 향상된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공교육의 사교육화에 대한 우려다. 초등학생의 경우 6월 진단평가를 통한 학습부진아를 철저히 가려내 여름방학도 없이 문제풀이를 한 결과란 얘기다.

충북 도교육청은 사전에 10회분의 문제지를 내려 보내고 장학사가 순시를 돌며 학습부진아를 수시로 체크하고 학교 간 경쟁을 붙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교 행사에 참석한 교육감까지 해당학교에 학습부진아가 몇 명인지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따져 물으면서 일선 교장·교감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따라서 학교마다 예상문제를 뽑아 반복적으로 문제풀이를 시키고 시·군별 경쟁까지 했다는 얘기다.

또 2010년 일제고사를 대비해 6학년에 진학예정인 초등학교 5학년생들을 겨울방학과 봄방학에 불러 오후 5시까지 문제풀이를 시키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일부 초등학교 6학년은 학력신장을 위해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학습부진아를 줄이기 위해 특수학급이 아닌 학생을 편성하거나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을 타 자치단체로 전학 가도록 하는 일까지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교육현실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자괴감을 느낀다'는 말부터 전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초등학생들은 5감 발달을 하는 시기로 단순 기계식 문제풀이를 할 것이 아니라 창의력 및 인성교육, 다양한 체험교육을 시켜야 함에도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한창 성장기 패스트푸드로 끼니 해결"
청원의 한 교사는 "무엇보다 학생들 건강이 우려 된다"며 "한창 성장기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인건비 문제로 학교급식이 어려운 방학 동안 학교발전기금으로 조달된 햄버거나 피자 등 패스트푸드(fastfood)로 끼니를 해결했다. 교과과정에 대한 교육현장의 혼란도 무시 못 한다. 주입식교육은 압축식 교육의 폐단으로 교육현장에 사라진지 오래다. 이후 정답이 없는 창의력 교육을 받아 왔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95년 이후 15년 동안 치러지지 않던 학교 현장에서의 일제고사가 부활한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지난 95년 5.31교육 개혁안에서 학생들의 창의력과 다양한 체험교육이 중요시 되면서 정답을 요하는 문제지는 사라졌었다"는 설명이다. 단순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학력 진단평가는 당연히 성적이 좋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단순 반복되는 기계식 문제풀이를 강요하면서 학생들이 문제 유형에 익숙해져 성적이 오른 것이지 장기적으로 공부를 질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옥천의 한 교사는 "충북교육청이 시·군 교육청간 경쟁을 붙이기 위해 교육과정 평가원에 올라 있는 문제지 이외에 지난해부터 교과위원들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시험지를 내려 보내고 있다"며 "이 같은 시험은 학력신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력 미달자를 가리는 시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일선교사 "창의력 교육 온데간데없다"
이어 "학생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무시한 이 같은 교육은 사회적 비용도 크지만 미래의 꿈나무인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시험을 보면 점수가 낮은 경우가 있다. 이는 시험을 보는데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런데 시험을 보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 기계식 문제 풀이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무슨 생각을 심어 줄지 우려 된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교사는 "공교육은 5대 영양소 이외에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 같은 것도 섭취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며 "시골 아이들은 평소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방학을 이용해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조사보고서 등도 작성한다. 그런데 필수 아미노산을 섭취해야 할 시기에 성적을 올리기 위한 반복적인 문제풀이를 하고 있다면 인성교육에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고 전했다.

이 같은 교육현실에 대해 일각에선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공부의 신'이란 드라마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국 꼴찌들이 ‘천하대’에 가기 위해 특별반을 구성해 내로라하는 강사들이 출제한 문제풀이를 기계적으로 반복해 성적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매 방명분마다 공부비법을 전하며 인기를 끌었지만 공교육의 사교육화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교육청 "학교장 재량 학력신장 프로 운영"
이에 대해 충북도교육청 초등교육과 신병수 장학관은 "학교장 재량아래 인성교육과 학력증진을 위해 방학아카데미를 가진 것은 학교의 당연한 책무다"며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특기적성교육과 학력증진 캠프 등 방학아카데미를 열도록 했다. 문제은행 문제지 10회분을 일선학교에 내려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장학사 순시나 교육감 행사 참여시 학력신장을 독려 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 문제지는 단순 외워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며 "국어의 경우 긴 지문에 1∼2문제를 푸는 문제로 평소 독서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도 많았다. 학교별 차이가 있겠지만 학력증진 캠프와 기초학력 부진아 책임지도제는 일선학교에서 시행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우려 속에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지난 5일 '2009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최상위를 기록한 옥천 삼양초를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전교조충북지부는 곧바로 성명을 통해 정치적 선전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충북학부모회는 9일 전국단위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에 나서기로 해 파장이 예상된다.

전교조 충북지부 관계자는 "방과 후는 물론 방학 때까지 아이들을 강제 등교시켜 반복적인 문제유형 풀이를 통해 나온 결과로 학력신장과는 거리가 멀다"며 "이러한 학습은 장기적으로 학습흥미를 잃게 하고 사고력과 상상력을 잃게 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진정한 학력향상을 방해하는 장애요소가 될 것이다"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 3일 교과부가 발표한 ‘2009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도내 고등학교 1학년생은 지난해와 비슷한 학력 수준을 유지했지만 초등학생은 하위권에서 1위, 중학생은 중하위권에서 1위로 급상승했다. 이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전년도에 비해 초6은 1.8%포인트 감소한 0.9%, 중3은 5.3%포인트 준 4.7%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또 이번 평가는 사교육비 지출이 비교적 많은 수도권과 도심지역보다 농촌(옥천·보은)지역이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를 기록한 충북 교육에 대해 일선 교사들 사이 우려의 목소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국 꼴찌를 달리던 저조한 성적이 크게 향상된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공교육의 사교육화에 대한 우려다. 초등학생의 경우 6월 진단평가를 통한 학습부진아를 철저히 가려내 여름방학도 없이 문제풀이를 한 결과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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