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규 종식” 큰 틀 접근…각론에선 이견, 회사측에 ‘열쇠’ 달려 있어

한때 극적인 타결기미를 보이는 듯 했던 한국네슬레의 초장기 노사분규 사태가 또다시 갈짓자 걸음새를 보이고 있다. 한국네슬레 노사는 24일 오후 3시 임금 협상 제 24차 본회의를 가졌으나 회의 시작 20분만인 3시 20분께 150명 가량의 노조원이 직장폐쇄중인 청주공장 커피 생산라인 점거에 들어가는 바람에 협상이 기약없이 중단되는 돌발사태가 벌어졌다고 회사측은 주장했다.

사태직후 회사는 노조측에 “조속히 모든 불법 점거 및 위법행위를 중지하고 협상을 재개할 것”을 요구했고, 노조측은 당일 오후 6시 30분까지 상황을 정리한 뒤 협상에 다시 나서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추후 협상은 이뤄지지 못했다. 노조원에 의한 생산시설 점거사태는 풀어졌으나 퇴근하는 비노조원들의 차량을 막고 욕설을 하는 등 노조원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계속돼 결국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이런 급작스런 사태발전을 놓고 한때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지만 25일 “노조가 향후 불법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확약할 경우 언제든 협상에 다시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사태수습을 위한 조치에 나서 여전히 타협의 여지는 남겼다.

이에 대해 네슬레 전택수 노동조합 위원장은 “노조원들이 정당한 피켓 시위를 한 것 뿐으로 직장폐쇄중인 공장시설을 불법 점거한 사실은 없다”며 “회사측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을 그때그때 내세워 협상을 결렬시키면서 오히려 장기파업사태를 유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협상 중에 느닷없이 연봉제 도입 건을 제시하는 등 회사측에서 이번 사태를 조기에 종결시키려는 진정한 의사를 갖고 있는 지 의심케 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

예측할 수 없는 협상 분위기
하지만 이날 벌어진 예상 못했던 사태로 누구보다 혼란을 겪고 있는 쪽은 한국네슬레 사태를 걱정스레 지켜보던 지역 경제계다. ‘24일 사태’ 이전만 해도 비록 노조 측의 스위스 원정 투쟁단 출국 및 현지에서의 활동에도 불구, 노사 모두 장기화하고 있는 분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타협의 기운이 어느 때보다 부풀었던 게 사실인 때문이다.

실제로 분쟁 타결임박 소식이 날아든 것은 지난 14일쯤 부터였다. 한국 네슬레 노사는 13일 청주공장에서 청주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노사협상을 가진 데 이어 14일 오후 4시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음으로써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13일 협상에서 노사 양측은 “장기파업 및 직장폐쇄 사태를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서로 확인한 데 이어 노사가 각기 양보안을 제시키로 하면서 극적인 분규 종식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고조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 회사의 노사 양측은 18일과 21일에 본회의를 계속 가졌지만 번번이 최종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무위로 돌아갔다. 그런 끝에 24일 다시 열린 24차 본회의가 예상 못한 사태로 돌연 협상 분위기에 먹구름이 끼었던 것. 이 때문에 지역사회는 한국네슬레 경영진은 말할 것도 없고 노조 역시 부분적인 이해관계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대승적 타협정신을 발휘, 상호 한발씩 양보하는 속에서도 장기파업-직장폐쇄 사태를 종식시킬 것을 바라고 있다. 특히 ‘칼자루’를 쥔 회사측에서 큰 틀의 접근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정부가 노사갈등 사태에 대해 중재기능을 잃은 지 오래된 마당에 믿을 건 이해당사자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네슬레 노사가 24일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태를 대승적으로 접고, 결과와 상관없이 26일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은 이들이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열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만 하다.

노사간 쟁점은 무엇인가?·

근로조건·희망퇴직·연봉제 도입·무노동 무임금

노사간 임금협상 쟁점사항은 근로조건, 희망퇴직 조건, 임금인상폭,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관련한 것들이다. 근로조건에 대해 회사측은 현재 매우 포괄적 규정돼 있는 조항들을 해석상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노조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희망퇴직과 관련해서는 회사는 노사간 ‘협의’를 통해 실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반해 노조는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하도록 주장하고 있다. 또 연봉제 및 성과급 제도와 관련, 회사측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지만 노조는 반대하고 있고, 임금인상 문제에서도 회사는 자동승급 인상폭을 포함해 5.25%를 내놓은 데 비해 노조는 10.5% 인상을 요구하는 등 적잖은 이견을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무노동무임금 문제와 관련, 회사는 원칙은 꼭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노조측은 파업사태의 원인이 회사측에 있는 만큼 4개월 넘는 파업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손실액의 60%이상을 회사에서 보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 이처럼 노사양측의 견해는 쉽게 이견을 좁힐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듯 보인다. 그러나 노사 모두 최근 들어 융통성을 보이는 흔적도 드러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노조는 성과에 따른 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는 등 고용안정에 최우선적 중점을 두고 있지만 다른 부문들에 대해선 부분적이나마 융통성을 보이고 있으며, 무노동 무임금에 대해서는 회사측에서 일부 수정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장기파업 기간을 고려, 앞으로 올해 매출 목표액의 85%를 달성할 경우 1인당 150만원씩 주겠다는 회사측 제안이 있었다는 게 그 증거. 결국 회사에서 부분적이나마 무노동 무임금 고수 전략에서 약간의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4개월간에 걸친 파업기간의 임금에는 크게 못 미쳐 노조에서 선뜻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어쨌거나 지난 주초만 해도 노사간 대화분위기는 성숙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24일의 사태 이후 26일 노사가 다시 만남을 재개함으로써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진 현 사태의 타결 전망은 ‘0’의 비관적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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