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원 HCN충북방송 보도제작본부장

제가 지방일간지에서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딜 당시 가장 큰 꿈은 서울의 전국 단위 언론으로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꿈은 1995년 이전 도내 언론사에 입사했던 기자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 기회는 극히 적었고 IMF 외환위기 이전엔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로 서울의 전국 단위 언론사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젊은 기자들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이라는 격언을 입증하듯 IMF 외환위기가 서서히 극복되면서 전국 단위 언론사들이 다시 기자를 충원해 젊은 기자들의 꿈이 실현됐습니다.

특히 도내 지방일간지의 편집기자들이 중앙일간지의 러브 콜을 잇따라 받았고 자고나면 편집기자들이 없어질 정도로 상종가를 기록했습니다. 중앙일간지가 지방일간지 중 충북지역 일간지 편집기자들을 ‘싹쓸이’한 것은 외환위기 극복과 함께 증면에 들어갔고 청주 거주자의 경우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 손쉽게 회사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도내 지방일간지 3곳의 편집기자들은 먼저 옮긴 선배가 또 다시 후배를 불러 오는 형태로 중앙일간지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 친구인 박문홍 기자와 김문신 기자가 서울경제신문으로 자리를 옮겼고 또 다른 도내 편집기자들도 중앙일보, 국민일보, 스포츠 신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처럼 편집기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도내 지방일간지에 잔류한 편집기자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졌고 일부 일간지는 1명이 4개 면을 편집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반면 취재기자들의 서울 이동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앙일간지들은 증면을 단행하면서도 취재기자는 공채를 고수했고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간 취재기자들은 본지가 아닌 자매지를 선택하거나 신생 경제지 등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현재 관세청 홍보 담당자인 이호 전 기자는 동아일보가 아닌 소년동아일보의 취재기자로 이동했고 저는 아예 신문기자를 포기하고 평화방송 라디오 기자로 옮겼습니다. 또 충청일보 출신인 김창영 기자는 머니투데이를 거쳐 경향신문 취재기자로 이동하는 등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도내 언론사 취재기자들이 서울로 올라갔지만 편집기자들의 수와 비교하면 1/3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 중앙일간지들도 ‘신문의 위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방송 진출에 주력하면서 10여년전 도내 기자들의 엑소더스는 더 이상 재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통신사인 뉴시스의 창사 멤버로 다시 청주에 내려왔지만 그 당시 서울로 올라간 편집기자들은 나재필 기자(현 충청투데이 대전본사)를 제외하면 자신이 속한 중앙일간지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습니다.

2000년 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프집에서 도내 언론사에서 서울의 언론사로 옮긴 기자들이 모여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 술자리의 참석자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면서 자주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최근엔 거의 모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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