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청주 오찬간담회 구미 맞는 인사만 불러
“충북 따로 생각해 달라” 건의 일언지하 묵살

세종시 충북민심 ‘귀 막힌’ 총리

▲ 이태호 청주상의 회장-“정 총리 환영, 세종시 수정안 통해 충북발전…건배!”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 당일 대전을 방문하는 등 주말마다 충청권에 내려와 민심 달래기에 나선 정운찬 총리가 ‘인의 장막’ 속에서 지역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 23일 수정안 발표 이후 처음으로 충북지역을 방문해 오전에는 충북언론인클럽이 주최한 방송3사 토론회 녹화에 참여했고 이후 지역인사 20여명과 라마다플라자 청주호텔에서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청주지역의 분위기는 살벌함에 가까웠지만 정 총리는 이를 체감하지 못했다. 행정도시 혁신도시 무산저지 충청권비상대책위원회가 이날 청주MBC 인근에서 정 총리 규탄대회를 갖고 총리직 사퇴촉구와 최근의 충청권 비하 발언을 규탄했지만 충남 연기 등에서 발생했던 계란투척 등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이 삼엄한 경계에 나서면서 시위대가 정문까지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어진 오찬간담회는 한마디로 말해 환영일색이었다. 총리 내정 직후부터 세종시 수정 추진에 나서면서 고향인 충청도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다가 비로소 ‘금의환향’에 가까운 접대를 받은 것이다.

이날 참석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세종시 수정안 추진이 충청지역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다며 건배까지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날 오찬장 주변에는 세종시 수정안 찬성을 의미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지난달 간담회 봉변 ‘학습효과’
23일 라마다 플라자 오찬간담회는 수정안 발표 이후 충북의 민심을 처음으로 전달하는 자리였지만 사실상 수정안 추진 결의대회가 되고 말았다. 이는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예견된 것이었다. 이날 오찬에 참석한 인사들은 총리실에 의해 엄선됐다.

▲ 오석송 오창산단 이사장- “수정안 찬성 반대 떠나 중소기업 블랙홀 현상 우려”
총리실이 정 총리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친 것은 수정안 발표 전인 지난해 12월19일 청주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을 때 봉변을 당한 것에 대한 철저한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정 총리는 당시에도 CJB청주방송 대담프로그램에 참석한 뒤 지역인사 18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참석한 인사들은 유철웅 충북민간사회단체총연합회장, 이욱 미래도시연구원 사무국장 등의 추천에 의해 이뤄졌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세종시 수정반대 운동에 주도적인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비롯해 건설협회, 새마을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했다. 이상훈 충북개발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는 당초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참여인사들의 반발로 인해 결국 공개가 결정되는 등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참석인사가 모두 한마디씩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이상훈 회장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다면 훌륭한 지도자로서 후세에 기록되지 못한다”고 전제한 뒤 “충청권 주민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듣고 가슴에 꼭 담고 가길 바란다”고 일단 정중하게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원안추진을 요구하는 직설적인 발언들이 이어진 끝에 급기야는 “대통령을 설득하라. 안되면 총리직을 버려라. 아니면 총리 퇴진운동을 벌이겠다.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강태재 참여연대 대표의 말폭탄이 터지는 등 성토의 장이 되고 말았다.  

일부 인사 낯 뜨거운 수정안 예찬
23일 간담회는 지난달 간담회와 달리 비공개로 진행돼 참석자들은 허심탄회(?)하게 소신을 밝힐 수 있었다. 또 정치권이 배제된 채 열린 지난달 간담회와 달리 수정안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송태영 한나라당 충북도당위원장이 참석했다. 20여명의 참석자 가운데 입을 연 사람은 9명뿐이었다.

▲ 안성호 충북대 교수-“행정 비효율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수정안 관철”
이태호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단체인으로서 당연히 참석해야할 인사지만 정 총리와 경기고 동창이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부각됐다. 이태호 회장은 “정운찬 총리의 충북방문을 환영한다. 세종시 수정안을 통해 충북발전을 앞당기자”며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오석송 오창산단 이사장도 ‘찬성 또는 반대보다 중소기업 유치와 관련해 세종시가 블랙홀이 될까 염려스럽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안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안성호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도 “행정의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안 교수는 이 같은 수정안 찬성발언 끝에 ‘충청권을 묶어서 보지 말고 충북, 대전, 충남에 각각 몇 가지씩 민심 수습안을 내달라’는 요지의 건의를 했다가 정 총리로부터 “그 것만은 절대 안 된다”며 일언지하에 묵살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독교와 불교계 인사들도 대거 참여해 분위기를 거들었다. 엄만동 청주기독교연합회장은 수정안 찬성의사를 분명히 밝힌 뒤 “총리께서 청주에 온 건 목사들의 교인 심방과 같은 것이다. 주민들의 소리를 잘 들어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현우 청주불교방송 사장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종교적 갈등을 해소해 달라”며 간담회 취지에서 벗어나 청원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수꾼 발언 “정치용어 몰라서…”
이밖에 곽승호 청주테크노폴리스 대표이사도 세종시 간담회라는 취지와 달리 중소기업청의 업무처리와 관련해 고충성 민원을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모 인사는 “이날 간담회를 왜 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비보도를 전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려오는 오송에 삼성의 바이오시밀러가 입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조언할 수는 있어도 내가 가란다고 가겠냐’며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더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정 총리는 충북방문에 앞서 20일 대구·경북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삼성그룹의 바이오시밀러는 이 지역(대구)에서 관심 갖고 있는 거라 빼달라고 부탁해서 뺐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정 총리는 17일 여성단체와 간담회에서 ‘세종시 원안’사수에 나선 지역민과 시민단체들을 겨냥해 ‘사수꾼’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궁색한 변명을 했다. 정 총리는 “정치적 용어를 잘 몰라서 굉장히 오해를 받는다. 우리 형님도 전형적인 농사꾼이다. 사수꾼의 ‘꾼’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일컫는 사람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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