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실 충청북도여성발전센터 연구개발팀장

여성과 관련한 것 중에 가장 오해가 깊은 것이 페미니즘(feminism)이 아닌가 한다. 여성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부터 여성운동에 적극적인 여성, 그리고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몇 안 되는 남성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매우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지향하는 것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억압과 편견 없이 결정할 수 있는 것, 몸에 대한 자기결정이 존중되는 것 등으로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목적 하에 기존의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을 시도하는 진보적 운동 가운데 가장 가혹한 평판을 받고 왜곡된 이미지를 갖는 것이 페미니즘인 것 같다. 간혹 사람들은 여성정책이나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反남성주의 혹은 이기적 여성주의자로 오해하기까지 한다. 여성운동가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정신은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여 피 흘리는 경쟁을 하고자 하는 反남성주의가 아니다. 벨 훅스가 ‘행복한 페미니즘(Feminism is for everybody)’에서 말한 것처럼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지 않으며, 성차별주의가 몸에 밴 사람이 여자인가 남자인가 어린애인가 어른인가에 상관없이 그 모든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이 문제라는 점을 꼬집는다. 즉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성차별주의에 입각한 차별과 억압에 대한 반대이지, 남성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적 의식과 사고는 자연스레 가정에서부터 배우게 되는 규범에 기인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범을 가부장제라고 하며, 이런 규범은 여성과 남성 모두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는 억압과 차별이라는 어둔 굴레를 안겼으며, 남성에게는 가장이라는 막강한 힘과 그에 걸 맞는 책임을 떠안게 만듦으로써 무거운 현실의 벽을 안게 해 주는 중요한 억압기제로 작동하게 하였다.

결국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자신의 결정권을 억압하는 억압기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8년 불어닥친 IMF 때 남성들은 이 가부장적 권리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가. 이 때문에 가부장사회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남성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은 여성 또한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권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는 여성들 가운데 자신의 특권을 유지한 채 페미니즘의 대의를 벗어버린 여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성차별적 의식과 가부장제적 권위를 벗어버린 남성이야 말로 페미니즘 운동의 지원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인 구도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습(舊習)이 타파해야 할 적이라는 것이다.

한 사회가 어떤 지향점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이념을 통한 극한 대립이나 대결, 갈등을 생산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향점은 방향성이고 옳음에 대한 대의이며, 행복한 삶에 대한 희구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사회에서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행복한 사회에 대한 원망이고 갈망인 것이며, 행복한 페미니즘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 배제와 억압의 타파와 소멸을 통한 행복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성들이 가부장적 권리와 책임을 모두 떠맡고 가는 ‘불행한 한국사회’도 조금씩 변화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