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의 잃어버린 3년 평생 장애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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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의 잃어버린 3년 평생 장애로 남아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01.1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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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미군 파견…총상, 기록 없어 보훈대상 제외
유준모 옹, 육군본부·美국방부 등 10년째 수소문

▲ 1966년 군복부 당시 미군에 파견돼 심각한 총상을 입었지만 기록이 없어 보훈대상자 등록이 거부된 유준모 옹(71).
“미군 부대에 파견돼 사격 훈련 중 동료 병사가 쏜 탄환이 허벅지에 박히는 총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미군병원에서 6개월이 넘도록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글쎄 그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유준모 옹(71·청원군 내수읍 은곡2리)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에 겹겹이 입었던 바지를 내려 흉터를 보여줬다. 4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깊게 패인 탄환자국과 한 뼘이 넘는 수술 흔적,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생긴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평생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장애인으로 살아왔지만 이 노병은 상이군경이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총상을 입고 치료받은 당시의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02년 유 옹이 국가보훈처를 찾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군복무 중 사고를 증명할 수 없다며 거절당했고 법원에 제기한 소송도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국방부 협조를 얻어 육군본부에 보관중인 문서기록을 열람하고 미국 국방부에도 의뢰해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기록이 없다’ ‘알 수 없다’ 뿐이었다.

미군 부대 파견 기록도 없어

유 옹은 1965년 입대해 경기도 포천의 육군 제6군단 헌병으로 배치된 뒤 이듬해 3월 미2사단으로 파견돼 최전방 순찰업무에 투입됐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6군단 헌병대중 2개 소대가 파견소대였는데 그 중 나는 문산으로 파견됐다. 지금은 우리 국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당시 문산에는 미2사단이 주둔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부상을 당한 것은 미군으로 파견된 지 4개월 만인 7월 1일, 평소와 같이 사격 훈련중에 다른 미군 병사가 오발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탄환이 허벅지에 박혀 버린 것.

▲ 오발사고의 흔적. 4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시의 심각했던 상처가 흉터로 남아있다.
그는 “당시 사수와 부사수로 역할을 정해 권총사격 훈련이 실시됐는데 동료 병사가 방아쇠를 잘못 당겨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사고를 당하자 파주시 금촌동에 있던 미군부대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며 유 옹은 입원기간만 6개월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부상의 상처는 매우 깊었다. 박힌 탄환을 제거하기 위해 20㎝가 넘도록 엉덩이 부분을 절개해야 했고 지금도 탄환이 박힌 서너곳의 흔적과 수술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치료 뒤에도 수 년 동안이나 왼쪽 다리 부상부위 근처에 염증이 되풀이 되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 결국 제대로 걸음을 걷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유 옹이 국가보훈처를 찾은 것은 지난 2002년. 군복무 중 부상을 당했지만 권위적인 시대적 상황과 무지로 인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공자신청을 위해 발급받은 병적기록부에는 부상은 물론 미군으로 파견됐던 사실 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6군단 헌병대 순찰병으로 근무하다 만기전역 한 것으로 기록돼 있을 뿐이었다.

6개월 입원치료 기록도 못 찾아

몸에 남아 있는 흉터 만으로는 군복무중 부상을 인정할 수 없다며 국가유공자 등록이 거부됐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마저도 패소 판결을 받았다.

총상 사실을 증언해 줄 전우 마저 없는 상황에서 방법은 당시 기록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던 유 옹은 치료를 받았던 미군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국군으로 대체돼 미군이 문산을 떠나며 그 병원도 없어져 버렸다.

그는 “미군이 주둔지를 동두천으로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병원도 이전했는데 역시 나에 대한 진료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 옹의 기록이 본국에 있을 수도 있다는 주한미군 측의 설명에 따라 이번에는 미국 국방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한참 만에 온 미 국방부 회신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진료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허탈한 답변뿐 이었다.

그는 “어수선한 시절이었다고 해도 진료 기록은 고사하고 미군부대로 파견됐다는 사실 조차 병적기록부에 남아 있지 않는 게 말이 되는가.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고 법원에 호소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주한미군이나 미국 국방부에 협조를 의뢰해도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는 대답 뿐이다. 행정이나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다”고 안타까워 했다.

▲ 유 옹의 병적기록부에는 부상은 물론 미군 파견 사실 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비슷한 피해자 더 있을 것

병무나 미군병원 진료기록을 찾을 수 없던 유 옹은 부상 사실을 증명해 줄 전우를 찾아 헤맸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이 더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2사단에 파견됐던 사람을 몇 년 전에 만날 수 있었다. 부상이나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의 병적기록부를 확인하니 역시 미군 파견 기록이 없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국군에서 만기 제대 한 것으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청원군 옥산면에 사는 한모 씨(69)도 비슷한 경우다. 1968년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 씨는 헬기로 지상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탄약박스가 덮치는 바람에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기록이 없어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 옹은 혹시 육군본부에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을지 수소문해 봤지만 더욱 기가막힌 사실을 확인했다며 탄식했다.

그는 “미군에 파견된 우리 국군병사가 사고나 부상을 당했다는 기록이 단 한건도 없었다. 물론 파견 기록 자체가 누락된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고를 당한 많은 장병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보훈제도가 확대돼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제도의 허점이 남아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자를 구제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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