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충청방문의 해 맞아 교통·안내 표지판 설치 소홀
국보 2·보물 9·도지정 36점 소재… 위치 찾기 불편 호소

▲ 직지로로 향하는 흥덕로 교통표지판 어디에도 흥덕사지를 안내하는 교통표지판은 찾아 볼 수 없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정문에 이르러서야 작은 현판을 겨우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사진 오른쪽은 청주고인쇄박물관 인근에 자리한 청주 흥덕사지에 복원된 금당. 금당은 부처를 모시는 곳이지만 역시 불상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복원현장에서 발견된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종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역주민도 모르는 문화사적지 '빈축'>청주시가 문화사적(史跡)을 제대로 알리는데 소홀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는 도 지정 문화제나 사적지에 대한 부실한 교통·안내표지판으로 외지인은 물론 지역주민조차 청주의 문화 유적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사료(思料)된다. 더욱이 올해는 '대충청방문의 해'라서 지역주민의 자긍심이 될 문화 유적지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시에 따르면 청주에는 철당간을 비롯한 2점의 국보와 9점의 보물, 36점의 도 지정 문화재가 있다. 하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낮은 관심도와 시의 홍보 부족으로 이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광장에 위치한 국보 제 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은 대로변 교통안내 표지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용두사지 철당간은 용두사란 절 입구에 있던 불기(佛旗)게양대다. 

또 청주의 상징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찍어낸 흥덕사지는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가려 그 존재가 퇴색(退色)되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직지로 113(운천동 866)에 자리한 흥덕사지는 총 면적 9만2588㎡로 지난 1985년 운천지구 택지조성공사 중 발견되어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됐다. 발굴 당시 금당터와 강당터, 탑터를 둘러싼 남회랑터 등이 발견됐다.

또 각종 기와와 벽돌, 그릇 조각을 비롯해 청동으로 만든 금구(禁口), 작은 종 등이 출토되어 사적 315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부처와 사리를 모시는 금당과 삼층석탑만이 복원됐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흥덕사는 발굴 조사에서 '서원부 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고 새겨진 금구 조각과 '황통십년(皇統十年)… 흥덕사(興德寺)'라고 새겨진 청동불발 뚜껑 등이 발견되면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인쇄한 유적지임이 세상에 드러났다.

주객이 전도된 인쇄출판 메카 흥덕사지
청주시는 지난 1991년 흥덕사지 일원에 대한 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이듬해인 1992년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설립하고 청주가 인쇄출판의 메카임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교통안내 표지판이나 현판, 홍보책자 등에 청주고인쇄박물관만을 강조해 알리면서 흥덕사지에 대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실제 일부에선 직지의 고장 청주를 알리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알아도 흥덕사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가 많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이는 직지로로 통하는 흥덕로의 대부분 교통안내 표지판이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위치만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사적 315호인 흥덕사지는 직지로 청주고인쇄박물관 정문을 찾아서야 겨우 작은 현판 하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청주고인쇄박물관에 들어서야 위치 안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이를 두고 청주의 한 시민은 "주객이 전도된 형국이다"며 "본래 땅 주인인 흥덕사의 문패가 바뀐 셈이다"고 꼬집었다.

이는 충북도 유형문화재 109호로 지난해 2월 2년여에 걸쳐 복원공사를 완료한 청원군청내 청주동헌도 마찬가지다. 청원군청으로 통하는 충북도청 앞 4거리 율곡로 어디에도 청주동헌을 안내하는 교통안내 표지판은 찾아 볼 수 없다.

율곡로 청주동헌 안내 교통표지판 없어

▲ 청주 동헌과 역사1번지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충북도청앞 4거리 율곡로 교통안내 표지판에는 청원군청과 군의회의 위치만을 알리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청주 중앙공원에 자리한 망선루.
조선시대 청주 목사(牧使)가 일하던 관아 건물인 동헌은 효종 7년인 1656년 5월 27일 목사 심황이 초창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청원군수 집무실로 이용되어 왔으나 1970년 지붕보수 공사를 거쳐 1978년 청원군 청사가 신축되면서 사용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원형이 크게 훼손됐으나 지난 2006년 12월 26일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가 정면 7칸 측면 4칸, 이익공(二翼工)겹치마 팔작지붕 2고주 7량 가의 본래 모습대로 복원됐다.

청주의 역사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청주 중앙공원에 대한 안내도 부족하다. 서원경성의 치소(治所:행정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청주읍성의 중심지였으며 조선 효종 2년(1651)에 충남 해미(海美)에 있던 충청병영이 옮겨온 장소다. 먼저 충북도 기념물 제 5호인 압각수 은행나무가 있다. 물난리와 고려 말의 정치상황을 말해주는 은행나무는 800년이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청주 중앙공원은 중국 비림(碑林) 공원에 비견될 정도로 각종 기념비가 즐비하다.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의 주역이었던 중봉 조헌 선생의 기적비(紀蹟碑)를 비롯해 허당 영규대사, 화천당 박춘무 선생의 기적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목사 서유민의 선정비(善政碑)를 비롯해 김효성 청백 선정비가 있다.

이 밖에도 흥선대원군이 집정할 당시에 발생한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의 시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척화비, 지난 1949년 세워진 대한민국독립기념비, 1961년  4.19 의거비, 5.16 기념비 등 모두 2개의 기념탑과 17개의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1번지 중앙공원 안내도 부실
특히 청주 중앙공원에는 지난 2000년말 복원된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 110호인 망선루(청주 남문로 2가)가 있다. 고려시대 청주관아의 객사 동쪽에 있던 누각 건물로 청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망선루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궁궐로 돌아가다 청주에 머무른 기념으로 과거시험을 치렀는데 이 때 합격자의 방을 취경루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세조 7년(1461)에 목사 이백상이 중수하고 한명회가 누각의 이름을 고쳐 망선루라 하였다.

망선루는 교육문화의 도시 청주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문화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알리는 청주시의 홍보 마인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청주의 한 관련전문가는 "대충청방문의 해를 맞아 준비 소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역주민은 물론 한국의 자긍심이 될 문화유적을 제대로 알리려는 교통안내 표지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사적지 복원은 설계도면이 없을 경우 종교계 형평성 때문에 예산 지원이 어렵다"며 "올해 문화 유적지에 설치할 신규 및 훼손보수 안내표지판은 모두 6개소 1200만원의 예산이 마련되어 연내에 설치할 예정이다. 다만 교통안내 표지판이 부실한 것은 관련부서와 상의해 혼선을 주지 않는 선에서 보수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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