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해주십시오. ...’
릴케의 시심(詩心)을 지금 우리들의 기도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 동범(東凡)은 위대했습니다./ 이분을 단 1년만이라도 우리곁에 놓아 두시어/ 바침의 생애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라고 말입니다.
위 글은 우리 지역 민간사회단체 운동에 평생을 몸바쳐 오던 동범 최병준씨가 지난달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어 위중한 상태에 이르자 평소 그의 인품을 높이 샀던 지역 문화·예술, 시민사회단체들이 투병중인 최씨를 돕자고 나서면서 쓴 호소문이다.
그만큼 최씨의 막다른 투병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 9월6일 소화가 잘 않된다며 불편을 호소해 지인들에 의해 병원에 가 진단을 받은 결과 사형선고와도 같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인공심장 박동기로 연명해 온 심장병이 합병증을 일으켜 회복키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이들 단체들은 “최씨가 20여년전 심장마비증세로 쓰러졌을때도 지역사회의 도움과 관심으로 그를 살렸는데 이제는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내야할 절대 절명의 과제를 남기고 다시 위기에 처했다”며 이제는 건강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한 관심을 다시한번 촉구하고 있다.

몸도, 명예도 회복되길 기원

최씨가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 사투를 벌이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지역사회에 쏟은 그의 사랑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독지가가 맡긴 성금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법정에 선 상황이라는 점 때문이다. 몸도 명예도 추스르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서려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최씨는 지난해 건설업자 이모씨로부터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받아 이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청주지검에 의해 횡령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지난 3월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최씨의 급작스런 발병도 그 사건으로 해서 검찰에 불려 다니는 과정에서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의 진찰의사는 최씨를 진찰하고 난 후 급격한 병의 진행을 보고 가족들에게 “급작스런 쇼크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민간활동의 산파역이요 견인차

최씨는 지역 사회에 민간단체를 태동시킨 지역 민간 시민운동 선구자로 통한다. 청주문화원 창건을 통한 신문화운동을 전개했고, 예총 충북지부를 출범시켜 예술진흥을 도모했다. 로타리, 유네스코, 청주시민회 등 실로 이 지역 민간활동에 최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최씨는 이런 사회적 활동과 업적 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주의 사람들은 그에 앞서 바보스럽도록 우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위해 헌신 봉사 해온 그의 무욕(無慾)에 더 높은 평가를 한다. 박영수청주문화원장은 “돈벌이가 되는 일은 고사하고 월급 한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지만 궁색한 빛 없이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사회 활동에 전념해 온 분”이라고 전한다.
이에 청주문화원을 비롯한 충북예총, 청주예총, 충북시민참여연대, 청주경실련, 국제로타리, 충북지역개발회, 문장대용화온천개발저지 도민위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최씨의 투병생활을 돕기위한 성금 모금운동에 나서는 한편 청주지법에 관대한 처분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민경명 기자


그를 쓰러지게 한것은 무엇인가
최씨가 횡령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된 것은 평소 최씨를 존경하던 독지가의 성금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 89년 당시 청주종합복지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최씨는 건설업자 이모씨로부터 매월 100만원을 송금 할테니 알아서 불우노인돕기 등 좋은 일에 써달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이후 최씨는 송금된 돈 일부는 불우이웃 돕기에 쓰고 일부는 통장에 보관한 채 96년 성금 기탁자 이씨를 만나 그때까지 적립된 돈을 더 적립해 무료 양로원 건립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던 것.
이 성금이 겉으로 드러나 문제가 된 것은 김영세교육감 비리의혹과 관련하여 주변인물을 수사하던 검찰이 김교육감과 이씨의 관계를 추적하다 이씨로부터 김교육감의 처남인 최씨의 계좌로 10여년간 돈이 지급되어 온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이씨의 김교육감에 대한 로비자금의 일부일 것으로 보고 수사하면서 시작됐다. 조사 당시 이씨는 김교육감에 대해 로비를 했는지를 집중 추궁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순수하게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최씨에게 보내준 돈에 대해서도 교육감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추궁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최씨에게 성금을 보내기 시작한 시기는 김교육감이 모학교 교장으로 교육위원도 교육감도 아닌 상태였고 이씨는 이런 후원금을 최씨 이전부터 몇군데 이미 보내주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최씨에 대한 수사는 김교육감 수사 불똥에 의해서 발화되어 평생을 도덕적이고 청렴하게 살아온 한 개인의 인생을 파탄시킨 일로 번진 것으로 여겨진다. 김교육감도 입원한 처남 최씨를 찾아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회한의 한숨을 토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의 잣대는 냉정하다고 하지만 성금의 관리 잘못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노(老) 지역 사회 운동가가 겪어야 했을 충격과 참담함을 암으로 재생시키지는 않았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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