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고수 히든카드 들고 진로개척 중
박근혜 결심 따라 정계개편 편승할 가능성도

▲ 우택 지사가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들과 세종시 원안고수를 전제로 정치적 동맹을 맺은데 이어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적 결단도 불사하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정 지사의 입지를 좁히기보다는 다양한 진로개척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충청권은 농락을 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누차 밝혔고 집권 1년 반이 흐르는 동안에도 이에 대한 번복 움직임은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보면 작심하고 이를 준비해 온 것이 분명하다. “만약 충청이 아니고 영호남이었다면 이럴 수 있겠냐”는 자괴감 섞인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이 지역의 현실이다.

정우택 지사는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놓고 실익을 따져보라고 부서에 지시했을 정도로 관망하는 자세였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수정추진에 반발해 사퇴할 때까지도 정 지사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를 꺼렸다. 정 지사가 확실하게 원안고수를 천명하기 시작한 것은 충북도의회 한나라당 소속 의원 20명과 조찬회동을 가진 지난해 12월3일 이후다. 이날 회동에서는 정 지사가 원안을 고수하다 정치적 불이익을 당할 경우 도의원들도 행동을 함께하겠다는 결의가 이뤄졌다.

정 지사가 이처럼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은 심상치 않은 여론의 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지역정가에서는 주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특정 후보 측과 지근거리에 있는 기획사에서 도지사 선거관련 ARS여론조사를 실시했고, 정 지사가 민주당 후보군인 이시종, 홍재형 의원에 비해 3~6% 포인트 차로 밀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세종시 수정을 전제로 한 선거에서는 여당 후보에게 현직 프리미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기류가 관측된 것이다. 이 같은 우려는 CJB청주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정 지사는 1월4일~6일까지 도내 유권자 10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CJB의 여론조사 결과 434명(39.85%)의 지지를 받아 민주당 이시종 의원 378명(34.71%)을 5% 남짓 앞섰다. ‘모르겠다’는 답변은 25.44%에 달했다. 앞서기는 했으나 이 의원이 아직 출사표를 던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조사라는 점에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주방송의 여론조사는 전화면접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4% 포인트였다.

정 지사 오히려 ‘다양한 선택’ 가능
11일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직후 정 지사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정 지사는 이날 기자 간담회를 갖고 “세종시 원안 추진이란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정부와 여당에 다시 한 번 원안 추진을 촉구한다”며 “충청권의 민심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계속 밀어붙이면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지사는 또 “방법과 시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제 세종시 문제는 원안 추진이냐 수정안이냐 둘 중 하나다. 현재 찬반이 갈리는데 충북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2월까지 지켜본 뒤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겠다”며 2월이 결행의 시점임을 내비쳤다.  

정 지사의 기자회견은 다양한 승부수를 내포하고 있다. 폭넓게는 도지사를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점쳐볼 수 있다. 이 경우 정 지사는 잠시 정치적 휴면기를 갖거나 정치적 대망인 대권도전의 포석으로 수도권 보궐선거(총선)에 출사표를 던질 수도 있다.

도지사에 출마한다고 치면 여러 갈래 길이 있다. 세종시와 관련한 한나라당 내 친박의 반발이 원만히 봉합될 경우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 오히려 공천은 계파안배 측면에서 확정적이다. 하지만 충청권의 배신감은 더욱 커져 본선 경쟁력은 약화될 공산이 크다.

박근혜의 선택 따를 가능성도
한나라당을 떠나 선거를 치른다면 박근혜의 선택을 따라갈 가능성이 절대적이다. 박 전 대표는 차기 대권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다만 당내 견제가 극심하다는 점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결국 국민적 지지를 얻게 된다면 정치적 입지가 급속하게 무너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정운찬, 정몽준 등 두 정씨에게 힘이 실리게 된다. 박 전 대표가 만약 정치적 결단을 감행한다면 이번 지방선거 혹은 대선정국에서 실시되는 2012년 총선이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정 지사의 ‘정치적 결단’ 발언에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 자유선진당이다. 선진당이 그릴 수 있는 밑그림도 상상에 따라 다양하다. 정 지사와 그를 따르기로 한 일부 도의원만 영입할 경우 정당지지도를 고려할 때 찻잔 속의 폭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유력한 도지사 후보자를 선봉에 세운데 따른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정도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표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진행될 경우 파괴력이 있는 세 규합도 가능하다. 먼저 한나라당 내 친박 국회의원이 60명 선에 이르는데다 자유선진당 17명, 친박연대 8명만 더해도 80여석이 훌쩍 넘기 때문이다. 여기에 창조한국당과 영남지역 무소속 의원까지 가세하면 소속 국회의원만 100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 참고로 한나라당 의석은 169석, 민주당은 87석이다.

자유선진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감행할 경우 이회창 총재와 손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충청권에서는 가장 위력적인 정당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정 지사는 ‘말(言) 정치 9단’
작심하고 내뱉는 독설로 기선제압 노려

정우택 지사는 말 정치의 고수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근거 없는 ‘전략공천설’로 현역이자 당내 막강한 경쟁자였던 이원종 지사의 출마를 포기시켰다. “당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지사를 원한다. 박근혜 대표가 직접 영입한 지방선거 후보 1호다”라는 것 등이 이 지사를 괴롭힌 논리의 전부다. 그러나 정작 이 지사가 출마포기를 선언한 마당에도 전략공천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결국 당내 경선이 실시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이시종 의원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이 의원은 일찌감치 당내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차기 후보로 간택됐고, 도당위원장, 예결위 간사라는 선물까지 받았음에도 출마선언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다.       

충주시장 임기를 남겨놓고 당을 옮겨 총선에 도전한 전력이 있는데다, 관료출신의 소심함까지 겹친 결과다. 정 지사는 이런 이 의원을 향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선거는 승산이 있어야 하는데 이의원이 과연 정치생명을 건 불장난을 할 지 지켜보겠다”며 견제구를 던졌다. 이에 “정 지사는 예의도 없고 오만하다”며 반격한 것은 이 의원이 아닌 홍재형 의원이었다. 이 의원이 바로 반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 지사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지사의 말 정치가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제대로 통했지만 이번에는 자기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닐 것이다”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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