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9년 11월 9일 동독 동베를린지역 책임자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중대발표를 합니다. 이 날을 기해 동서독을 가르는 베를린장벽을 비롯해 동독의 모든 국경을 개방한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를 신호탄으로 수천, 수만의 동서독 시민들은 쇠망치를 들고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 철옹성의 시멘트벽을 마구 부수면서 환호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 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베를린장벽은 동서독 분단 44년, 장벽이 건립 된지 28년만에 허망히 허물어지고 맙니다.

국경이 개방되자 수백만 명의 동독 인들이 물밀 듯 서독으로 밀려듭니다. 서독으로 향하는 국경 검문소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행렬이 몇 킬로씩 늘어섰고 분단의 상징이던 브란덴 브르크문은 연일 역사의 현장을 보려는 인파로 붐빕니다. ‘동방정책의 아버지’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도 그곳에 와 찾아 감회에 젖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동독의 개혁은 가속화되고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동서독 통일은 달성됩니다. 이 감동적인 드라마는 세계사의 한 장을 장식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됩니다. 14년 전의 일입니다.

2.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 된지 올해로 58년이 되었습니다.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지 반 백년이 넘은 것입니다. 오늘도 그곳에는 철조망을 가운데 두고 남북의 형제들이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눈을 부릅뜬 채 총칼을 맞대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2000년 극적인 6·15공동선언이 있었지만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끊겼던 철도를 다시 잇고 육로를 연결하고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장관급회담 등 각종교류가 지속되지만 같은 민족에게 남북은 여전히 금기의 땅 일 뿐입니다. 이름 모를 새 들은 철조망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 남북을 넘나들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마음대로 오고가지 못 합니다. 입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지만 휴전선의 철조망이 걷힐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 합니다.

3.
요즘 청주교육대학에서는 담장 허물기 작업이 한창입니다. 몇 일전 시작한 공사는 이미 담을 모두 허물어뜨려 인도와 교정이 하나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대학의 교정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 될 것입니다. 시멘트로 뒤덮인 회색 빛 거리를 오가는 성급한 시민들은 벌써부터 낙엽 쌓인 교정을 거닐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결단입니다. 물론 경상도에서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일반 가정집까지 담장 허물기 운동을 벌인지 한참 되었다지만 늦게나마 지역에서 이런 운동이 시작된 것은 시사하는바 적지 않습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지역사회는 행정수도니, 엑스포니, 전철역이니 하는 ‘거대 담론’만이 무성할 뿐 지역을 가꾸는 일에는 등한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교대의 이번 담장 허물기는 ‘작은 혁명’이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그것은 담장이상의 의미를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온갖 갈등으로 중병을 앓고있는 것은 모두가 마음속에 벽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계층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은 모두 마음속의 견고한 벽이 원인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마음속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마음속의 벽을 허물면 온갖 갈등은 사라집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담장, 휴전선의 철책을 허무는 일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청주교대의 담장허물기운동이 불씨가 돼 다른 학교, 다른 기관으로, 온 시내, 온 나라로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청주교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 본사고문 kyh@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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