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대표이사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출범 2년을 맞은 현 정부는 경제회복을 내세워 어느 때보다 큰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전반기는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 촛불 시위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후반기에는 갑자기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기업의 도산과 실직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필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어둡고, 모두가 불안한 가운데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시선을 우리 충북으로 돌려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수 주민들이 찬성하는 청주·청원 통합문제가 3번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론 내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상징이었던 세종시 건립이 현 정부의 수정 강행 방침에 따라 왜곡 변질되고 있다.

올 한해가 어둡고, 불안했던 원인으로 소통의 부재를 꼽고 싶다. 교수신문이 2009년 한해를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旁岐曲逕 방기곡경’을 선정한 이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바른 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것이다. 교수신문은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 추진, 미디어법 정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샛길, 굽은 길로 돌아갔음을 비판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사전에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거친다면 굳이 ‘샛길과 굽은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국회 과반수 의석을 내세워 타협과 합의를 소홀히 하고 있다. 국민 반대여론이 만만치않은 미디어법을 단독 강행처리하는가 하면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도 힘으로 밀어부칠 기세다. 특히 세종시 문제는 충청권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다.

정운찬 국무총리 발언으로 돌출된 세종시 문제는 그 시점과 접근 방식의 미숙함 등으로 논란 자체가 꼬일대로 꼬여버렸다. 합리와 이성의 자리가 줄어들면서 마치 이념논쟁과도 같은 대결 구도로 고착화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논란만 격해졌을뿐 본질은 과거와 바뀌지 않았다. 당초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다가 헌법재판소의 제동으로 행정중심 도시로 축소되는 과정에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가치론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현실론이 공방을 벌였다.

결국 지역균형발전의 가치에 무게중심을 둔 참여정부는 여야합의로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컨셉을 만들어냈고 특별법까지 통과시켰다. 하지만 대기업 CEO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적 효율성을 내세워 세종시법 출생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전 정부청사 이전의 실효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행정도시를 유령도시로 덧칠하고 있다.

세종시에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유치하겠다는 대안도 볼썽사납다. 그동안 과학벨트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지역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특히 교과부측에서 전국 18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적합도 평가에서 세종시가 6위에 그쳤는데도 이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일이다. 과학벨트를 ‘미운놈 떡하나 주듯’ 세종시에 내준다면 다른 자치단체들이 곱게 수용할 리 만무다.

예상컨데,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1월 발표되면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지역까지 반대운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2월 국회 입법 과정에선 더욱 시끄러울 것이 뻔한 일이고, 곧이어 6월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를 건드리는 자체가 나에겐 (정치적)손해”라고 애둘러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정부 수정안 발표이후 예상되는 세종시 논란의 핵분열은 결국 대통령 자신이 아닌 국민·국가의 손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나마 빠른 시점이다. 개인의 삶도 원칙대로 사는 것이 제대로된 사후평가를 받는다, 하물려 국가의 일일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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