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CJB청주방송 PD

케이블채널에서 하루에도 몇차례씩 재방송되는 트로트음악 전문 프로그램들은 대한민국에서 현재 잘 나가는 대중가수들의 향연이다. 인기 가수 태진아가 <잘살거야>를 부르는 것을 봤다. 가사 내용은 특별한게 없다. ‘잘 사는 날이 올거야. 포기는 하지 말아요… 우리 모두 잘 살거야. 잘 사는 날이 올거야.’ 그저 잘 살거야를 반복하면서 ‘잘 살게 될거’란 메시지를 전한다. 1절이 끝나고 간주가 흐르는 사이 인기 가수 태진아는 관객을 향하여 큰 소리로 덕담을 한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여러분 부자되세요’는 2002년 초 배우 김정은이 모델로 나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광고 카피다. 그 광고의 여파는 대단했다. 그전까지는 부자되라는 덕담을 할 생각을 감히 못했던 우리가 너나없이 한목소리로 부자되라는 덕담을 서로 건네게 된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나 넥타이를 맨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나, 심지어 지식인 그룹에서조차 새해 덕담으로 ‘부자되세요’를 외쳐댔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10억원이 생긴다면 감옥에 가도 좋다’는 기막힌 가치관을 갖게 되었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성공한 CEO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학자와 교유자, 기업인들로 구성된 로마클럽이 1972년에 산업사회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일이 있다. 자연을 가공해 이윤을 내는 산업시대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었고, 이후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를 보완하는 제3의 물결식의 지식정보사회론이 지구를 이끌었다.

미래학자들은 인간의 노동력을 통한 자연자원의 가공을 통한 부의 창출은 끝났다, 지식과 정보로 부를 창출하는 정보사회가 도래한다고 설파했다. 우리나라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 본격화되었던 지식정보사회 담론이 그것이었고, 국민 개개인들까지 이제는 육체적인 노동력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통한 창조력이 부를 만들어낸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산업시대의 성실성은 그리 큰 미덕이 아닌 것이 되었다. 열심히 일해서 착실하게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알찬 정보를 가지고 잘 활용해 ‘대박’을 만들어내기 위한 ‘창조력’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국민 개개인의 성공시대가 되면서 달라진 것은 많다. 지식과 정보를 활용할 줄 모르는 착한 아버지는 무능한 아버지가 되었다. 부자 아빠가 좋고, 투자 잘하는 아내가 사랑받는 시대가 되었다. 최첨단 지식정보 시스템으로 구성된 금융이 지식정보사회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고, 신용카드가 그 첨병 중 하나다.

뒷이야기지만 ‘여러분 부자되세요’ 광고를 통해서 진짜 부자가 된 사람은 그 광고의 모델인 여배우였다고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부자되기를 권했던 특정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 최근에 김정은의 ‘여러분 부자되세요’ 카드 광고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카드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다.

인기를 끌었던 한 드라마 주인공 커플의 캐릭터를 그대로 채용한 카드광고인데, 드라마에서 직장문제로 전전하는 남자주인공이, ‘여보, 나 정직됐어!’를 외치며 뛰어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누구나 이야기하면서도 그래도 이것은 비정상이라는 공감을 갖고 있었다 싶었는데, 어느새 이 현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메시지로 들렸다.

그리고 광고에서는 또 남편 내조를 잘 하기 위해 카드를 멋지게 쓰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오늘도 어느 무대에선가 ‘여러분, 부~자 되세요!’를 외치는 태진아를 탓할 수만은 없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살피기는 커녕, 오히려 함께 부화뇌동해온 잘 난 사람들을 탓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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