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추미애의원이 당권에 도전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연장자가 많은 당을 원만히 이끌어 갈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성의 치마폭이 남자의 바지폭보다 넓다"라는 말을 던졌다. 어쨌든  당찬 여자 추미애는 일찌감치 '재목'으로 지목됐고 이제 서서이 그 본류를 향하고 있다.  과도기적 증후가 심각한 당내 분위기를 감안,  다수 의원들이 조순형 대표, 추미애 총무라는 안정체제를 원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역발상으로 위기속의 선장을 자처한 것이다.  만약 추미애가 당권을 쥐게 된다면 민주당의 체질변화는 불문가지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지난 대선 때 추미애는 여성이기 앞서 정치인으로서 옹골찬 모습을 보였다. 남들이 노무현을 짓밟을 때 반칙이라며 악착같이 후보를 지켜냈고,  선거 유세에서도 특유의 흡인력으로 관중들을 끌어 모았다. 노무현과 결별할 때도 정치적 부담이 컸을테지만 여걸 추미애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바로 이런 '원칙'에서 반추되는 희망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정치의 낭인이 된 이인제나, 정치의 사생아 김민석을 통해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그것은 절대 자기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당당함의 소산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변함없이 그를 지켜 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추미애가 당권도전을 선언한 이후 또 다른 데에 시선을 둘 수 밖에 없다. 바로 본인이 말했던 치마폭을 의식하는 것이다. 여성의 치마는 일종의 안식처다.  그만큼 포용의 함의를 시시한다.  어릴적 무서움이나 수치심을 느끼면 애들은 거리낌없이 어머니의 치마속을 찾는다. 치마의 기능은 또 있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 치마는 본인의 눈물닦이가 되어주고,  쭈그려 얼굴을 파묻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추미애의 치마는 이런 기능의 역할이 중요할 것같다.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맘에 안 든다고 "야이, 개새꺄 네가 기자야"를  내뱉으며 핏대를 올리기 전에 우선 비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소신만을 곧추세웠지만 앞으로는 상대를 보듬는 넓은 아량이 더 요구될 것이다.  조직의 개인과, 조직의 책임자는 이런 차이점이 있다.  추미애의 치마폭이 넓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그녀가 입을 치마는 짧고 빳빳한 청치마가 아니라 길고 폭넓은 주름치마였으면 한다. 그래야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을 놓고 반칙을 일삼은 소위 '반칙왕들'이 수두룩한 민주당을 끌어 갈 것이다. 성공하는 추미애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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