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의리도 없었다. '6자(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총, 상공회의소, 노동부, 노사정위원회)'를 제안하고, 연말에 함께 '공동총파업'을 하자던 한국노총.

그들이 노동자와 민주노총을 버리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도, 절차도 필요 없었다.

난데없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한나라당, 경총, 한국노총' 만의 3자회담을 선언하고, 급기야 복수노조 유예, 전임자 임금 타임오프제도입이라는 야합문을 발표했다.

복수노조 금지. 이 기막힌 현실을 보라. '무노조'로 대표되는 국내굴지의 대기업. 사실, 이 기업은 무노조가 아니다.

그 누구도 노조의 위원장이 누군지조차 알 수 없는 이른바 유령노조다.

이 유령노조를 근거해 복수노조금지라는 현행법에 의거해 노동기본권의 가장 핵심인 단결권(노조 결성권)을 가로막았다.

한국노총. 그들은 이 노동기본권을 또다시 팔아 먹었다. 논거도 노동자들을 배신했다. 복수노조가 도입되면 투쟁 경쟁이 일어나, 강경 노조가 득세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복수노조허용이 좋은 것이 아니라 했다.

바로, 사용자들이 즐겨 내세우던 논리 그대로를 한국노총이 인용한 것이다.

어찌 보면, 노조가 경제의 걸림돌이라고 자인하고, 노조해산을 선언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지도 모를 정도다. 정말로, 기막힌 현실이다.

노동조합이 노조답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어용노조'가 판을 치면, 노동자에게 더 가혹하고 잔인하다.

내가 평생잊지 못할 기억. 이른바 청주의 모 택시회사 노조위원장 살해사건. 이제 시간이 흘러 10년이 다되어 간다.

이 회사의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몇 개의 택시노조 위원장들이 독단적으로 사납금 인상을 합의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철회를 요구했으나, 이들은 잠적했다.

그리고, 급기야 흥분한 조합원이 노조위원장을 찾아내, 흉기를 이용해 살해한 사건이다.

노동조합이 노조답지 못할 때 결과는 이렇게 비극적이다. 그 피해도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뒤집어 써야 한다.

힘이, 부족해 밀릴 수도 있다. 패배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을 저버릴 순 없다. 살림이 아무리 궁하다 한들, 처자식을 팔아 넘길 순 없다. 저 혼자 살자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팔아 넘긴 것. 이것과 그것이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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