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이(증평군 자치행정과)

주말부부로 남편과 떨어져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다. 수월찮게 드는 출퇴근 경비가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생이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남편이 사택에서 혼자 생활 해 온지도 벌써 5년째.

주말부부의 삶을 살면서 나는 이중적인 가치가 내면에서 충돌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남편의 빈자리 때문일까. 가슴이 휑하니 뚫린 것 같아 부산함으로 채워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허기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억지 독신 생활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때때로 남편이 곁에 없어서 편할 때도 있다. 남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음식을 적당히 해서 먹어도 신경 쓸 일이 없고, 술을 좋아하는 그이의 일정치 않은 귀가로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건 내겐 큰 선물(?)이다. 토요일마다 집에 오는 남편은 오자마자 옷가지를 훌렁 벗어 던지고 잠부터 자기 일쑤다. 그런 남편의 몸에 걸쳐져 있는 피곤을 벗겨 꾹 짜면 양동이 가득 땟국이 나올 것 같다. 그이가 벗어놓은 옷과 양말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옷가지들은 남편의 몸을 기억하는 듯 꿈틀거리며 돈다.

세제를 꾸역꾸역 먹고 세탁기 밖으로 허연 거품을 토해내는 남편의 옷가지들을 보면서, 회사에서 힘들었을 그를 곁에서 생생히 지켜보는 것 같은 착각이 내 마음을 안쓰럽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직장에서 아래에서 치받치고 위에서 눌림 당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 속에 이런 모든 것들을 구겨 넣고 참아내며 남편은 때때로 얼마나 토해 내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으로 가슴이 찡하다. 집에만 오면 잠만 자다 간다고 남편에게 투정도 참 많이 부렸었는데. 그동안 나는 나이만 먹은 철부지였던게 틀림없다. 남편은 새까만 밤이 허옇게 벗겨지는 월요일 새벽이면 아쉬운 잠을 뒤로 하고 일어난다. 가장이 갖고 있는 무거운 책임의 열쇠, 회사원으로서의 책무를 둘둘 말은 열쇠뭉치와 자동차 열쇠를 허리춤에 찬 채 집안 가득 안타까움만 풀어놓고 출근한다.

집까지 남편을 끌고 온 구두가 현관에서 반쯤 벌린 입으로 그이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뒤 굽이 더 닳은 구두를 보니, 남편이 기우뚱거리며 짊어졌을 무거운 삶의 짐이 느껴진다. 오래 신어 편할 데로 편해진 구두를 구겨 신은 남편이 나가고 난 후에도, 현관에서는 오랫동안 퀴퀴한 낡은 가죽냄새와 그이의 체취가 남아있다. 나는 남편의 낡은 구두를 볼 때마다 눈에 거슬려 새 구두를 사자고 여러 번 졸랐었다. 그럴 때마다 손 사레 치는 남편의 고집이 밉살스럽기까지 했었는데, 그이는 그 편안함이 좋았나보다.

그런 남편이, 낡은 구두만큼이나 편한 가족 곁으로 일주일 후면 다시 올 것이다. 오늘따라 그런 그이가 더 그립다. 이런 나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안타까움 애틋함은 매일 살을 부대끼면서 느끼게 마련인 갈등과 권태를 사전 봉쇄해 주는, 주중(週中)별거 생활이 가져다 주는 부산물이라고 애써 폄하하고 싶지 않다. 다른 주부들은 매일같이 더 따뜻한 남편 사랑, 가족사랑을 실천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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