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수사를 좌고우면 않고 대차게 밀어 부치고 있는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다. 이들을 지지하는 팬 클럽까지 만들어졌다니 알만 하다. 나아가 혹자는 이들에게서 이탈리아식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를 연상하는 것 같다.

피에트로 검사를 스타로 만든 ‘마니 폴리테’는 국민의 전폭적 지지 속에 현직 수상에까지 칼날을 들이댄 끝에 국회의원 150여명을 포함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줄줄이 법정에 세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눈앞이 캄캄했다”며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란 깜짝 발언을 내뱉도록 한 것이나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를 국민 앞에 머리 숙이게 한 것도 한국판 마니 풀리테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이로 인해 그 역시 곤궁한 처지에 몰린 것으로 보였던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수사’를 전격 제안한 것이 또 한번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다. 언제부터, 또 어떤 계기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현 정권이 ‘깨끗한 손’을 빌려 정치지평에 새판을 짜려 한다는 분석은 어쨌든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 때문인지 한때 검찰에 한없는 신뢰를 보내던 한나라당은 ‘깨끗한 손’의 전방위에 걸친 성역없는 수술 집도에 위기감을 느끼는 인상이다. 나아가 이젠 “검찰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음모론을 들먹이고 허겁지겁 정치개혁안을 내놓는 등 당황하고 있다. 또 민주당은 한배를 탔던 대통령과 신당에 대해 대선자금 관련 비리의혹들을 터뜨리며 “이회창씨처럼 노 대통령도 국민 앞에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등 국면이 요동치고 있다. 여기에 전면 수사를 제안한 대통령의 진의에 대해 기대감 못지 않게 의구심 어린 시선이 혼재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꼬여가고 있다.

게다가 좌든 우든, 여든 야든 어느 쪽에게서도 ‘도덕적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는 현실때문에 국민은 참담해하고 있다. 진정한 반성과 정치개혁의 의지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정략적 음모의 냄새를 더 진하게 맡고 있는 게 국민들의 후각인 것이다. 한끼에 30만원 짜리 호텔 식사를 즐겼다는 모 정치인이나 해외 도피중인 인물의 집에서 거액권 수표와 돈다발이 굴러다녔다는 얘기들은 ‘밥값 만큼’도 못하는 정치권을 상징하는 몇몇 ‘소품’들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들이 역사발전을 위해 꼭 치러야 할 과정이라면? 우린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큰 ‘얘기’와 논의들이 종국적으로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그래서 회피할 수 없는 당위적 과제라고 이해하면서도 서민들에겐 절박하게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동인력시장의 썰렁한 모습, 쌀 우유 옷가지 등을 대상으로 한 생계형 절도범죄가 급증하는 이 사회, 그래서 정치권을 본받은 막가파식 강력 범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범부들의 걱정, ‘등 따뜻하고 배부른 세상’을 고대하는 서민의 소박한 희망들은 영원히 ‘작은 얘기’, ‘작은 일’로 파묻혀야만 하는 것인가.

“논쟁적이어서 명분이 큰 이야기들에만 매달리는 성향이 많은 게 우리 국민인 것 같다”며 “우리(평범한 사람)는, 특히 지방 사람은 지방의 얘기(삶에 가까운 얘기)들을 해야 한다”고 늘 주장하는 친구의 말이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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