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갈수록 줄어들어 걱정", 편한 일만 찾으려는 행태에 자성론도

11월 3일 새벽 5시 30분, 며칠 누그러졌던 날씨가 입동을 앞두고 뚝 떨어져 새벽 공기는 더욱 옷깃을 여미게 했다. 상당구 수동 인력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용직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저마다 담배 한 대와 커피 한잔으로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어깨에 맨 가방의 무게만큼 그들은 지쳐 보였고, 입에 문 담배는 그들의 시름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청주시인력관리센터(이하 인력센터) 김두호 실장에 의하면 하루 150여명의 일용직 근로자가 이곳을 찾는다. 인력센터는 4시에 문을 열고 4시 반쯤이면 부지런한 근로자들은 한 끼 500원하는 식사를 한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닷새간의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70여명 정도가 일자리를 찾아간다는 게 김실장의 설명.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곳을 거치지 않는 업체가 있으므로 하루 총 120여명이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찾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일자리 부족, 여기저기서 괴성
인력시장의 시계는 빨랐다. 이곳에서의 새벽 5시 30분은 일과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아침식사를 급하게 마치고 나와 급하게 봉고차에 오르는 하루살이 근로자와 필요한 인력을 즉석에서 채용(?)한 뒤 서둘러 태우는 고용주의 모습이 여기저기 띄었다. 그런 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근로자들의 모습. 하지만 일자리를 사고 파는 곳의 풍경은 생각보다 그리 동적이진 않았다. 그들은 지쳐 있었고, 지친 일상을 다독거려줄 일자리를 찾기가 점점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더욱이 일거리가 줄고 없는 사람에게 혹독한 동절기가 다가오면서 그들에게는 겨울나기가 벌써부터 걱정거리였다.

경기가 침체되면 우선 건설업계가 꽁꽁 얼어붙는다. 현재 청주지역의 건설현장은 가경동 푸르지오와 용암동 마이빌 아파트 건설현장 정도다. 인력시장을 주로 찾는 쪽은 주로 건설 부문인데 경기가 안 좋다보니 그 영향은 서민들의 밑바닥 경기인 인력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주로 오늘 하루 일자리를 찾아간다는 이모씨(53)는 “오늘은 늦게 출발하는 것이다. 보통 5시 이전에는 출발하는데 오늘은 늦었다. 청주 주변에 일자리가 없어 원정을 가는 것이다. 일거리가 계속 있으면 며칠 더 있을 예정이다”라며 차에 올랐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한 지 5년째인 이씨는 요즘 청주에서 찾기 힘든 8만원짜리 일터로 향했다.

주중동에서 매일 출·퇴근한다는 김모씨(64)는 보기 드문 할머니였다. 새벽 5시에 40분을 걸어 이곳에 도착한다는 김씨. 저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나 심을 정도로 그는 왜소했다. “86살의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누워 있지. 거기다 남편(66)은 우울증으로 바깥출입을 하지도 못해. 그나마 내가 멀쩡해서 다행이지. 큰놈은 뇌종양으로 누워 있지, 며느리는 애들 둘 데리고 아등바등 허지. 여기는 힘쓰는 일이 많은데 나이도 많고 기력도 없으니 잘 써주지도 않고. 일거리가 없어서 그렇지 일거리만 있으면 닥치는 데로 허지.” 일자리가 부쩍 줄었다며 이어지는 김씨의 푸념. “다덜 살기 힘들다고 하는디 우리 같은 사람은 아예 죽으라는 얘기지. 그래도 작년은 괜찮었는디.”

한 달에 24일정도 꾸준히 일을 나가는 오모씨(47). “작년 초에 실직을 하고 나서 취직을 못하고 여기 나오고 있지. 마누라 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일자리가 없고 일당이 싸다는 건 반은 핑계야. 힘든 일은 일당을 많이 주는데 몸에 부친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일이 좀 편하고 일당이 싼 일은 하지 않으려 하다니까. 일자리가 줄어든 것도 있지만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다는 얘기지.” 오씨는 평소 그 시간이면 벌써 일자리를 향해 갔거나 도착했을 시간이라고 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는 증거라고 오씨는 말했다.

부당한 용역업체, “칼 안든 날강도”
근로자들은 용역업체에 대한 불만이 크다. 과다하게 수수료를 뗀다는 것. “아니 일당이 6만원이데 2만원을 떼는 놈도 있어. 일하는 놈 따로 있고 앉아서 생돈 먹는 놈 따로 있나.” “기자 양반이 어디다 좀 말 좀 해줘.” “칼만 안 들었지 날 강도여.” 용역업체에 대한 그들의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하루 일당의 10%를 수수료로 뗀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당 5만원짜리 일을 얻으면 10%인 5000원을 용역업체에게 수수료로 줘야 하는 것으로 이들은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5000원 중 40%, 즉 2000원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근로자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부당 수수료 징수 관행을 막을 특별한 제재가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또 용역업체에서는 교통비라는 명목을 내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임금에 편한 일만 찾는다?
어둠이 걷히고 도심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6시가 넘었는데도 인력시장 근처를 떠나지 않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하루살이를 자청한 사람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소위 고급인력으로 불리는 장모씨(37)는 “대기업에서 잠시 일하다가 15년째 이곳을 나온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직장을 적응하지 못했다. 꾸준한 수입은 없지만 결근, 지각, 조퇴가 없으니 자유롭고 마음이 편하다.” 장씨는 인력시장에서 보낸 시간이 긴 만큼 많은 노동자들과 안면을 트고 있었고 각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장씨는 인력시장의 ‘단골’ 들에 대해 쉽사리 알 수 없는 속사정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A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한다는 말도 장씨로 부터 들은 얘기다. 장씨는 “눈치가 돈 떨어지면 일하러 나오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인력시장을 2년째 찾는다는 한씨(39)는 “여기 나오는 사람들 얘기는 눈물 없이는 못 듣는다. 사회나 가정에서 대접 못 받고 (사회에)적응 못하는 사람이 입에 풀칠하려고 나온다. 열심히만 하면 웬만한 월급쟁이 정도는 된다. 편한 일 하던 사람은 여기와도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씨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 일용직 근로자를 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방학 때가 되면 이곳은 대학생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유독 흰머리가 눈에 띄는 강씨(65)는 “방학 때가 되면 고등학생들도 용돈 벌이하려고 와서는 일당을 뚝 떨어트려 놓는다. 업주들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 쓰려고 하지 누가 나 같은 늙은이를 써. 손자뻘 되는 애들이 용돈 벌려고 오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전 8시 50분. 인력시장 주변을 서성이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뒷모습이 더욱 쓸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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