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사회문화부장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전국청소년학생연합,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청소년모임…. 인권, 진보, 연합 등 특정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일부 어른들의 시각으로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라는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이름의 단체들이다. 이들을 위시한 7개 단체가 80주년 학생의 날을 맞아 전국의 중·고생 200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인권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토론회까지 가졌다.

조사결과 학생인권 침해에 대해 ‘변함없다 또는 심각해졌다’는 답변이 중학생 56%(372명) 고등학생은 69%(954명)를 넘어 ‘현 정부 이후 학생인권이 더 악화됐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여기에 학생이 행복해지기 위해 사라져야 할 것들이라며 이들이 제시한 다섯 가지 키워드가 ‘두발·복장 규정’ ‘0교시·야간 자율 학습’ ‘체벌’ ‘학생에 대한 편견’ 그리고 ‘2MB 정부’였다고 하니 반정부 세력이 청소년층에까지 침투한 셈이다. 고분고분 공부만 해야 할 학생들이 정부까지 걸고넘어지니 ‘광우병 촛불이 애들을 버려놓았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솔직히 기성세대인 나 역시도 이들의 당돌함에는 슬쩍 기가 죽는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조리 있게 따질 것은 따져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체벌을 줄이겠다며 학교에 이른바 ‘그린마일리지’를 도입했다. 말이 좋아 ‘그린’이지 이는 상·벌점제도에 분칠만 한 것이다. 학생도 학교도 성적순으로 철저히 서열화하는 상황에서 행실마저도 방정한 학생에서 방정맞은 학생에 이르기까지 점수로 매기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처지를 바꿔놓고 얘기해서 어른들의 직장생활, 사회생활도 이렇게 철저하게 점수로 서열화한다면 그 스트레스에 담배나 술 소비, 자살률이 크게 올라갈지도 모른다.

체벌을 줄이겠다며 등장한 또 한 가지 패악은 사소한 일에도 각서나 서약을 받는 것이다. 이는 문제아에 대한 훈계의 의미도 있지만 본질은 증거를 축적해 징벌이나 퇴출의 근거로 삼겠다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 9월부터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두발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전학을 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전교생에게 받는 사건이 발생해 학생들의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아침에 자주 지각하는 학생에게 기합을 주고 ‘교칙을 다시 위반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고 스스로 자퇴할 것을 서약한다’는 각서를 강요한 사건과 관련해 해당 교사에게 경고조치하고, 교직원들에 대해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한 것도 같은 사례에 속한다.

이 사건 속에 등장하는 학교는 청주의 모 전문계 고등학교다. 충청리뷰는 지난 6월 이 사건을 심층 보도했다. 안타까운 것은 사건 속의 학생이 보호자의 연서로 제출하도록 들려 보낸 자퇴서약을 가방에 간직한 채 고층 아파트에서 꽃다운 목숨을 내던졌다는 것이다.

취재결과 자퇴서약은 경찰 조서의 양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학교의 기본 각서양식과도 달랐고, 학교장 앞으로 제출토록 된 일종의 위조각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언론들은 문제아가 아버지로부터 들을 꾸중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도했다.

기성세대들은 ‘우리는 사정없이 맞고 자랐다’며 요즘 아이들의 나약한 심신을 나무란다. 그러나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것이 나았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이지가지로 다양성이 존중돼야 하는 시대에 다양성 없이 사는 청소년들의 인권은 만신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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