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11월의 저녁거리에 바람이 붑니다. 온 종일 하늘을 날던 새들, 둥지를 찾아 들고 지친 어깨 움츠린 귀가 길 행인들 발길에는 낙엽이 채입니다.
 단풍으로 물든 진입로 플라타너스 터널 길, 그곳에도 낙엽은 쌓입니다. 나무들은 잎을 떨궈 점점 가지를 드러내고 쌓인 낙엽은 질주하는 차들로 하여  이리 저리 흩날리며 철새들처럼 군무(群舞)를 연출합니다. 시인 김광균은 그런 낙엽의 모습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묘사하였습니다.
 8일이 입동(立冬), 23일이 소설(小雪)이니 이제 시절은 겨울로 들어섭니다. 음력으로는 이 달이 10월로 옛날 농촌에서는 1년 중 춥지도 덥지도 않을뿐더러 수확을 끝내 곳간을 가득 채운 추수동장(秋收冬藏)의 느긋한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한해의 수확을 감사하여 일월산천(日月山川)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풍년이 되면 민심이 넉넉해지지만 흉년이라도 들면 겨우살이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던 것도 이 때입니다. 소작으로 근근득생(僅僅得生)하던 농민들은 땔감걱정, 김장걱정, 이엉걱정으로 한꺼번에 겨우살이걱정이 몰려있는 것이 바로 요즘 이때인 것입니다. 그 때나 이 때나 가난한 서민들로서는 걱정이 다를 게 없겠지만 말입니다.
 지난 해 대선 때 기업들로부터 수 백 억의 돈을 거둬 사무실에 그득 쌓아놨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게 요즘 우리 국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이 바로 정치권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수 십억, 수 백억원이 아이들 이름처럼 회자되고있는 것을 보노라면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탄식을 하게됩니다.
 아무리 썩어도 그렇지, 이처럼 썩을 수 있을까. 개혁을 외치는 대통령의 심복이 십 수억을 받아 챙기고 공당(公黨)을 자처하는 정당이 여기 저기서 수 백억을 걷어들이고, 그러고도 석고대죄는커녕 "우리만 먹었느냐"면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후안무치한 작태이기에 말입니다.
 요즘 검찰 참 잘합니다. 정치권의 협박에도 휘둘리지 않고 제 역할을 다 하는 모습, 정말 대견합니다. 언제 검찰이 이처럼 줏대 있게 소신껏 수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 동안 말로만 내세웠던 사회정의구현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됐건, 여당이 됐건, 야당이 됐건 범법이 있으면 성역 없이 파헤치고 단죄하는 것이 검찰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기에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불신을 받았습니다. 그랬기에 '권력의 주구(走狗)'라는 언짢은 소리마저 들어야했지 않습니까.
 이번 정치자금 문제를 계기로 검찰은 국민 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정치권의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사회는 비로소 법치가 확립되고 정의사회의 구현도 가능해 질 것입니다.
 개혁이 다른 게 아닙니다. 검찰이 본연으로 돌아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개혁입니다. 강자에게는 굴종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했던 것이 지난날 우리의 검찰이었습니다. 지금 '검찰이 잘하고있다'는 여론조사결과는 그래 더욱 희망적입니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검찰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일엽락천하지추(一葉落天下知秋)요, '나뭇잎 한 잎  떨어지니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회남자(淮南子)의 시구(詩句)가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사는 일이 바쁘다하더라도 한 여름 무성했던 나뭇잎이 왜, 가을이면 땅으로 떨어지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시 한 수를 찾아 읽으면 금상첨화이고요. 때 마침 보름달이 휘영청 중천에 떠 있습니다.
                                                            / 본사고문 kyh@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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