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여섯 차례나 역임한 이종근 선생이 지난달 22일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96년 14대의원 임기를 마지막으로 낙향한 이 선생은 지병으로 최근까지 고향에서 투병을 계속해왔습니다. 향년 81세.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청빈, 그 자체였습니다. 청렴하기 대쪽같은 성품은 국회의원직을 여섯 번씩이나 지내면서도 초가삼간 누옥(陋屋)을 즐겨 살며 타고 난 강직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충주농고를 졸업하고 해방 뒤 육사 8기로 군에 들어간 그는 1961년 김종필 김형욱 등과 함께 5·16군사쿠데타에 가담, 준장으로 전역했습니다. 63년 민정이양 과 함께 정계에 입문하면서 40년 가까운 의정생활은 시작됐습니다.

첫 번 째 6대 때는 전국구로, 나머지 7, 9, 10, 13, 14 다섯 차례는 지역구로 계속 당선된 말하자면 충주의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국회 농림위원장, 윤리위원장을 역임했으나 패거리를 거느리거나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 선수(選數)에 비해 요직을 맡을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결벽증이라고 할만큼 성격이 워낙 곧아 그가 남긴 일화는 너무도 많습니다. 육군 중령으로 1군사령부 근무 시 5·16에 가담한 그가 조창대 엄병길중령 과 함께 쿠데타에 비협조적이던 이한림1군사령관을 체포, 서울로 압송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쿠데타가 성공한 뒤 김종필에 반대하여 오치성등과 ‘반김라인’에 섰던 일도 5·16 비사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처음 국회의원이 된 뒤 서울에 살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마포의 친지 집에서 불편한 하숙생활을 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소식을 듣고 “국회의원이 하숙을 할 수 있느냐”며 2백50만원을 하사해 동대문밖에 작은 한옥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모처럼 내 집을 가졌지만 군부대 부식비 계산하듯 생활비를 매달 빠듯이 줘 자녀들을 고생시켰습니다. 언제나 낡은 양복에 해진 구두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국회근처 설렁탕집과 짜장면집 은 그의 단골식당이었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요,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부인 주용출여사 역시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남편이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주 여사는 충주 단월동의 머리를 굽혀야 드나들 수 있는 초가에서 줄곧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60년대 어느 땐가 국정감사 차 충주에 왔던 동료의원들이 인사 차 방문을 했었는데 밭을 매던 주여사가 흙 묻은 옷차림으로 달려 와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몇 해전 병을 얻어 투병중인 주여사는 지금 남편의 운명조차 모른 채 병원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그의 고향충주를 사랑하는 애향심은 각별했습니다. 5·16 뒤 곧바로 단행된 행정구역 개편 때 괴산군의 노른자위이던 상모면을 중원군으로 바꿔 놔 오늘 수안보온천이 충주 땅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또 충주∼서울을 연결하는 특급열차를 신설한 것도 큰 업적이었습니다. 당시 충주에서 서울을 가려면 청주를 거쳐 조치원에서 기차를 타야하는 등 불편함이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결벽증이라고 할만큼 곧은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애를 먹였습니다. 때문에 장관, 지사, 국장 할 것 없이 그 앞에선 늘 긴장을 해야 했고 충주시장과 중원군수는 특히 고역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그는 낙향한 뒤 임종에 이르기까지 쓸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부인마저 와병 중인데다 군 연금으로 근근히 약값을 충당하느라 투병생활이 어려웠다고 측근들은 전합니다. 그가 마지막 눈을 감으며 유일하게 가족에게 남긴 유산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아 그 동안 기거해온 단월동 농가뿐이라고 합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부패정치인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비뚤어진 현실을 보면서 이종근 선생, 이분은 세상을 참 깨끗하게 잘 살았구나하는 생각을 갖게됩니다. 선생이야말로 혼탁한 이 시대 청백리의 표본이요, 오늘 우리사회가 본 받아야 할 귀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초 나라의 정치가요, 대학자였던 굴원(屈原)은 “온 세상이 모두 썩었어도 나만은 깨끗이 살겠다(擧世皆濁我獨淸)”며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이 그를 기리는 까닭은 올곧고 깨끗했던 삶 때문일 것입니다. 삼가 선생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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