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사가 만사’라는 공직사회의 금언은 진리다.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는 정치공세의 표적이 됐고, 측근비리로 확대되면서 자승자박의 결과를 빚고 있다. 민선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자치단체장의 인사 또한 공정성 시비에 자주 오르내린다. 전임 단체장에게 총애(?)받던 직원들은 서서히 입지가 좁아지면서 한직으로 떠밀려간다.

어떤 자치단체에서는 ‘테스크포스팀’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책임업무조차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만난 한 공무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날 인정해주는 그분의 신뢰가 내겐 감동이었고 정말 소신껏 사욕없이 열심히 일했다. 물론 나를 두고 ‘후광을 믿고 설친다’고 비난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일 자체가 매력이었고, 결과가 좋으면 모두가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분이 낙선하고 난 얻은 것 하나없이 알몸으로 무인도에 던져진 심정이다.” 그는 전임 단체장 시절 이른바 ‘로얄패밀리’로 통했다. 과로로 인한 탈진으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일에는 물불을 안가렸다. 하지만 ‘그 분’은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떠났고, 그는 승진서열에서 밀리더니 아예 얼굴조차 보기힘든 부서로 배치받았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익히 알고있는 기자는 공직사회의 비정함이 씁쓸했고 ‘사표를 써야겠다’고 되뇌이는 그 얼굴을 마주보기가 괴로웠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단체장이 뒤바뀌면 어제의 ‘로얄패밀리’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다. 당선자의 선거에 조력한 공로가 있거나 충성을 의심치 않을만한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로얄패밀리’를 형성해 간다. 이같은 악순환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날이 갈수록 힘들게 한다. 지방선거 때마다 어느 한쪽에 패를 던져보고 싶은 유혹을 벗기 힘들다. 영동군에서는 아예 현직 면장들이 군수부인에게 선거자금을 받아 살포한 혐의로 선거법위반 실형을 받기도 했다.

신설된 증평보건소의 소장 임용과정을 취재하면서 단체장의 그릇된 인사관행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됐다. 지방보건법상 ‘의사 우선 임용’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평·영동보건소장을 보건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했다. 특히 증평보건소는 현직 개업의가 고향 봉직을 희망하며 미리부터 충북도에 보건소장직을 간청했었다. 하지만 충북도는 ‘신설 보건소라서 곤란’ ‘이미 내정된 상태’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지난 2001년에는 제천시장이 보건소장 승진서열 1위인 장애인 의사를 탈락시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당시 장애인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서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자 시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의 장애인 의사는 자신의 탈락배경에 대해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활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이 가장 서글픈 것은 자신이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될 경우이다. 물론 앞서 거론한 ‘로얄패밀리’는 자발적으로 ‘도구’가 된 경우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처럼 인사권자의 음흉한 의도에 따라 자신이 ‘재단’되고 불공정한 게임의 ‘희생자’가 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개인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관료조직의 기반이 무너지고 만다. 민선 단체장들도 대통령과 똑같은 심정으로 ‘인사는 만사’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