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세 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지난 번 게재된 ‘지방대생의 취업과 학벌’이라는 글에 여러 질의가 있어 대답한다. 지방대생이 분노해야 하는 현구조에 대해서 거듭 말한다. 현 정권도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잡고 있으며,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두고 있을 정도로 그 문제가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다. 국민들도 지방분권의 타당성과 시급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교육, 그것도 대학과 관련된 문제에 있다. 지방대학을 나와서 취직이 되지 않는데 왜 지방에 머무르려고 하겠는가? 설령 지방대학을 가더라도 모두 편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방은 몰락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편입자가 95년도에 5천명이었는데, 98년에는 8만명으로 늘어났고, 2003년 1학기의 경우 33,974명이었다. 올해 줄어든 까닭은 제도적으로 억제한 결과이다. 서울은 거의 다 채우는 반면, 지방대는 22,116명 모집에 15,821명만이 들어가 71.5%만 채웠다.

100대 기업을 기준으로 했을 때, 5%로도 되지 않는 지방대생 취업률 앞에서 지방대생은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20명에 한 명도 뽑아주지 않는 현실에서 지방대생은 무엇을 목적으로 공부해야 되느냐는 말이다. 인력란을 말하는 공과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전공을 살려서 나가는 지방대생은 반도 어렵다. 나머지는 서비스업 등 나름대로의 살길을 찾아나간다.

서울 강남의 땅값이 뛰는 이유가 무엇인가? 장관들이 말하듯이 결국은 교육문제 때문이다. 거주민들은 ‘얘들의 장래가 달려있는데 돈이 문제냐’는 하소연이다. 대통령도 말하는 ‘강남불패’의 신화는 바로 우리의 대학제도와 그에 따른 학벌의 정치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학벌이 권력과 돈을 환산되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이기 때문이다. 학벌이 순수하게 학문이나 개인의 능력과 필연성을 갖지 않음에도 그런 듯이 받아들여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도이치 이데올로기가 있었듯이, 한국에는 코레아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학벌이라는 이데올로기다. 이 허위의식은 정권과도 결탁하고 기업과도 제휴하며, 나아가 정권과 기업의 유착에도 대단한 역할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 ‘너희는 이제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학벌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 나는 우리와 같은 교육환경에서 청소년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정교한 세뇌과정과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이후 받는 차별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고 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 수립을 위해 부지불식간에 봉사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공직이 지역별로 할당되어야 한다. 공직이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지 결코 소수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한다든지, 여성을 국립대학교수로 할당한다든지, 농어촌자녀를 대학에서 선발해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방대학 졸업자들에게 해당지역 공무원시험의 일정량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좀 더 나가, 고위공직에도 지역별분배만이 아니라 지방대학에 대한 분배도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고위직이 내려오는 현재의 공직 시스템으로는 지역의 경쟁적 발전이 진작되기 어렵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올해 1월 및 6월 두 차례에 걸쳐 100개 기업에 대해 기재사항 수정을 요청하였다. 기업은 각 항목당 평균적으로 80%가 넘게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만큼 인권위의 권고는 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학력사항과 관련해서는 80%가 밑도는 삭제율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학교명에 관해서는 100개 기업 중 8개만 삭제하여 8%라는 최하의 삭제율을 기록했다. 그 밖에는 장애사항란으로 해당업체 10개 가운데 6개만이 삭제하여 60%의 삭제율을 보였지만 없애지 않은 이유가 대부분 ‘장애인 고용 우대’라고 밝히고 있어, 말 대로라면, 학력사항과는 분명하게 다른 취지를 지녔다.

가족사항, 신체사항, 질병관련, 병역(병역면제사유), 혼인여부, 종교, 출신지역, 재산사항, 성장과정 등, 흔히 이력서상에 필수기재사항으로 되어있는 것조차 많은 기업에서 삭제하였지만, 학교명만큼은 남아 지방대생에 대한 차별을 낳고 있다.

나는 오늘도 인권위의 ‘입사지원서의 차별적 항목시정을 위한 토론회’(2003.10.30.)를 위해, ‘학벌과 국제경쟁력’이라는 글을 써야만 한다.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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