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에서 여는 공연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최현석 대본 및 작곡 '뮤지컬 직지, 묘덕을 만나다'에서 주역인 백운화상을 '사랑을 찾아 떠도는 방랑논객'이라 하고, 비구니 묘덕은 백운화상의 연인이라고 설정해 놓았습니다. 고려 말 당대 최고의 고승으로서 온 나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백운화상 경한(景閑, 1298~1374) 큰스님을 가리켜 평생을 사랑 찾아 떠도는 방랑객이라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시상식 행사 안내 설명문에는 직지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뮤지컬화 한 것으로 당시의 등장인물은 실명을 사용했으나 현대의 뮤지컬 소재에 적합하게 픽션으로 처리된 부분이 있음을 밝혀 둔다고 했습니다만, 이 공연에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망발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습니다.

몇 가지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백운화상이 부르는 아리아에서 "그대를 찾으러 온 산하를 헤매는 내 심정 오! 그대는 어디에 있는 것이오. 나! 그대를 위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오. 이 책을 쇳물처럼 뜨겁고 강한 우리 사랑을 위하여 쇠글자로 종이에 새겨 그대에게 바칠 것이오!" 라든지 "이 모든 것도 당신, 묘덕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오 그대! 내 사랑 묘덕, 그대는 어디 잇는 것이오 이 청춘이 다 지나가도록 그대는 열일곱에 떠나보낸 그 소녀로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소."

그리고 마지막 묘덕과 백운화상의 이중창에 이르면 그 절절한 사랑고백을 차마 다 적을 수 없거니와 당대 최고의 고승과 비구니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포옹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게 춘향전이지 어디 백운화상이 보입니까. 하긴 백운화상이나 석찬, 달잠 그리고 묘덕까지 누구하나 승복을 입지 않았고 삭발은커녕 커다란 상투를 튼 모습에서 스님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금속활자 주조를 대장간에다가 연결시켜 석찬과 달잠을 대장장이로 설정한 발상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 주조에 대해 조금만 이해했어도 이런 발상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 과거 7불(佛)과 인도 28조사(祖師), 중국 110선사(禪師) 등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뽑아 307편에 이르는 게·송·찬·가·명·서·법어·문답 등을 수록한 직지의 성격을 전혀 도외시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저술하였다는 대목은 직지를 연애편지 묶음처럼 둔갑시켰습니다.

또 있습니다. 직지가 프랑스로 넘어 간 배경을 일제치하로 설정하고 독립만세 시위 현장에서 일본경찰에게 쫓기는 묘덕의 후손이 주한 프랑스 공사 쁠랑시에게 직지를 맡기면서 꼭 다시 돌려달라는 장면이 있습니다만, 일본 관헌이 직지를 약탈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일은 있지도 않았고 시대적으로도 대한제국 시절 초대 프랑스 공사가 부임해 있던 때입니다. 우리는 걸핏하면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규탄하면서, 이런 식의 반일감정을 유발하는 역사왜곡은 어찌 보아야 할까요.

청주시가 수억대의 예산을 들여 만든 뮤지컬이 직지를 선양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기는커녕 직지를 매도하고 백운화상과 불교를 폄훼하고 역사를 왜곡해서야 말이 됩니까. 영문번역조차 수준이하라는 지적입니다. 너무 심했습니다. 도대체 누구하나 자문도 감수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청주시의회는 즉각 청문회라도 열어 사실관계를 낱낱이 밝히고 대책을 강구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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