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학생 시절, 방학이 되면 태백선 기차를 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강원도 정선군, 영월군, 태백시의 경계를 이루는 함백산 만항재 밑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고 계셨다. 사북을 지나, 고한역에서 기차를 내리면 버스를 타고 갔다. 가는 도중에 열목어와 수마노탑으로 유명한 정암사를 지난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바라보든, 기차를 타고 바라보든 정암사의 앞 개울이건 보이는 개울의 물은 온통 시커멓다.

아버지가 탄광으로 떠난 뒤, 그곳 탄광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날 때의 일이었다. 캄캄한 밤중, 백열등 빛만 희미한데 인기척이 들리고, 이어 얼굴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커먼 사람. 그분이 우리 아버지였다. 그때,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이에, 마냥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를 서러움의 눈물.

강원도 산골짝 화전촌 마을에서 무작정 이곳 청주로 6남매를 데리고 왔던 아버지. 먹고 살길이 막막해 나이 오십 줄에 무작정 탄광으로 떠났던 우리 아버지. 떠나기 전 며칠 전쯤이었을까. 머리를 벽에 부딪히면서 울먹이던 아버지. 그런데 그곳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악착같이 살고 계셨다.

해발 1000m가 넘는 만항재 바로 밑. 물이 문제였다. 시커먼 개울물을 길어다 먹을 수도 없다. 산꼭대기에 우물을 판들, 물이 나올 리 없다. 사람들이 고안한 것은, 커다란 고무대야를 탄 먼지가 없는 산꼭대기에 묻고 물을 모은다. 그리고 이것은 마을의 공동 취수장으로 호스로 연결해 물을 모아 사용한다. 수백 가구가 이 하나의 취수장에 의존해 산다. 그러니, 매번 물 전쟁이다.

반면, 탄좌의 관리직급이 거주하는 사원주택에는 별도의 호스가 연결돼 집마다 개별로 물이 공급됐다. 어린 나이에, 우리 아버지가 거주하는 그 허름한 방에도 그 호스가 있어, 예전의 그 하얀 얼굴의 우리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소망했다.

엊그제, 딸아이가 발열증상을 보였다. 신종플루. 병원에 갔다. 다행히 신종플루 검사에선 음성반응이란다. '
몇 가지 주의 및 관찰사항을 듣고 수납을 하다 깜짝 놀랐다. 검사비용이 너무 비싸다. 다행히 아이 엄마가 그 병원의 직원이어서 감면을 받았는데도 그 비용이 장난 아니다.

전체 국민의 과반수가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신종플루. 현재의 검사비용과 치료비용이라면 수많은 사람이 검사와 치료를 아예 포기할지도 모를 일.

이제는 내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소망한다. 모든 부모가 아이들의 건강문제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서러워 울지 않기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