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충북청소년종합지원센터 팀장

이맘때쯤 시작되는 소풍이나, 수학여행 철이면 종종 초등학교 꼬맹이들의 상담전화를 받곤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절실하다.

‘저, 소풍가기 싫어요.(훌쩍)’
상담자는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의 슬픈 목소리에 마음이 아프다. ‘제가요, 친구가 두 명이 있는데요. 우린 항상 같이 다녔거든요. 근데요…이번에…소풍 갈 때요, 그 둘이 버스에서 같이 앉을 것 같아요. 전…(훌쩍) 혼자 앉아야 하는데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훌쩍)’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마음이 아프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당사자에겐 그것이 그리 사소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도깨비’라는 너무도 소중한 모임이 있다. 의례적으로 서로를 챙겨주던 생일파티가 있었건만 이번 나의 생일엔 누구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서운함과 야속함, 그리고 소외감 이러한 미묘한 감정이 아프게 했다. ‘저 오늘 생일인데 우째 이럴 수가 있어요. 빨리 축하해줘요.’ 툭하고 던진 표현에 그들은 더욱 미안해했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판단하고 나를 표현하지 않았다면 아주 견고했던 관계도, 낡은 동아줄처럼 서서히 삭아 낡은 인간관계로 전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서운함이 그들에 대한 기대이고 나의 애정의 양이라고 생각해 보면 그리 서운할 일만은 아닌 거다.

지금의 내 기분에 대한 ‘알아차림’을 시작으로 ‘너 때문이야’가 아니라 ‘나’를 주어로 해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로 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 안의 오해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 중요한 것은 표현한 다음 상대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하는 것이다.

‘선생님, 전 어떻게 하죠?’
‘그래 많이 속상하겠구나. 셋이 참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데 혼자 앉게 되니까 서운하고 왠지 소외받는 느낌이었겠네.’ ‘네, 맞아요. 그 애들이 미워요. 그리고 학교도 가기 싫고 소풍은 더더욱 가기 싫어요.’

‘그래 우리 학생의 마음은 그렇겠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우리 학생의 이런 마음을 알까?’‘아마, 모르겠죠. 평소에 이런 거 말 안하니까. 이런 말 하는 거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하고.’

‘그래 앞으로도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은 참 많이 일어나는 거란다. 그때마다 우리 학생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토라져 버리고 만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이 될 텐데 어떻게 하지? ‘음, 애들에게 얘기해 봐야 겠어요. 번갈아가며 앉던가.(중략)’

아이의 울음은 그쳤다. 아마도 더 깊은 친구관계를 위해 떡매를 시작했을 것이다. 선선한 가을날은 차가워 지지만, 사람의 마음은 더욱 깊어지고 훈훈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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