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정권 시절 전국체전 개최지의 시.도지사는 아예 대회에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다. 독재정권이 즐겨 구사하는 3S 정책을 굳이 거론치 않더라도 엘리트체육이 정책적으로 중시되던 때라 시도별 경쟁구도로 치러지는 전국체전은 당시 통치자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체전을 시원찮게 치렀다간 시도지사는 곧바로 화를 입는다. 때문에 시도지사의 안테나는 온통 대통령의 운신에 쏠렸고, 개회식에 참석한 대통령이 곧바로 상경하지 않고 잠시 지역에 머물기라도 하면 해당 지역은 잔치 분위기였다. 지역의 숙원사업이 단 몇시간내에 해결된 것이다. 지금도 체육계엔 이런 야사들이 무용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시기의 전국체전은 다분히 권위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이 때는 선수들의 입장식도 군대의 사열과 맞먹었다.

85년 춘천체전 때의 일이다. 전날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관계자들의 노심초사 아래 개회식은 예정대로 치러졌다. 이 때만해도 체전의 성공여부는 개회식을 참관한 대통령의 표정과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좌우됐다. 이날 비가 오는 상황에서의 개회식은 당연히 처음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얇은 옷이 흠뻑 비어젖은 학생들의 식전식후행사는 잦은 실수와 함께 보기에 아주 거북했다. 개회식 팡파래와 아나운서의 멘트에 맞춰 하늘로 높이 날아야 할 비둘기는 날기는커녕 행사장 바닥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에 갇혀 밤새 비를 맞은게 화근이었다.

대통령을 수행한 관계자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순간, 당시 전두환대통령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며 한 마디를 던졌다. “잘 했어, 수고했어.” 속내야 어떠했든 이날 대통령의 한 마디는 곧바로 ‘체전 성공’으로 포장돼 행사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그날 오후부터 춘천시내 약국의 감기약이 바닥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비를 맞으며 식전식후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 고스란히 감기에 걸린 것이다. 이날 밤 늦게까지 시내 중심의 약국마다 감기약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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