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A사, 30일 100재(百齋) 맞춰 봉안 예정
주지 B스님 “노무현 기억하자는 순수한 의미”

당초 상당공원에 세우려했으나 청주시의 불허와 보수단체의 반발로 수동성당에 설치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이 성당에서 철거된 지 한 달여 만인 오는 30일 청주시내 A사찰에 임시 봉안될 전망이다. 

▲ 상당공원 설치가 무산된 노무현 추모 표지석은 수동성당(사진 왼쪽)에 세워졌다가 현재 제3의 장소에 보관중이다. 표지석은 앞으로 상당공원이라는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청주 A사찰에 임시 봉안될 예정이다. 봉안장소(사진 오른쪽)를 가리키는 B주지스님. 봉안식은 30일 열릴 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는 49재가 열린 7월10일, 장례기간 중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던 상당공원에 추모 표지석을 세우려했으나 청주시가 당일까지 부정적 견해를 보인데다 보수단체들이 집회신고를 내고 현장을 점거함에 따라 이날 오후 7시20분에 이르러서야 수동성당에 표지석을 임시로 설치했다.

그러나 추모석은 그 자리에서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은 제3의 장소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사전협의가 없었음에도 현장에서 표지석 설치를 허용한 수동성당 곽동철 주임신부의 견해와 달리 청주교구 상층에서 표지석을 세우자마자 ‘철거하라’는 의사를 전달해 왔고, 결국 25일 몇몇 추모위 관계자들에 의해 제3의 장소로 옮겨지는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추모위가 표지석을 새길 때부터 비문에 ‘상당공원’ 대신 ‘이곳에’라는 문구를 고집했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상당공원에 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사실 다른 장소는 어차피 임시보관처였던 셈이지만 이마저 다시 옮겨야하는 상황은 추모위로서도 마뜩치 않은 것이었다. 

이 때문인지 표지석을 옮기는 과정은 비밀리에 진행됐고 현재까지도 제3의 장소는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는 논리로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다만 청원군의 한 주택에 보관돼 있으며, 부조된 조각의 얼굴 표정 가운데 일부 어색한 부분과 ‘ㅇ’자와 혼동되는 ‘ㅁ’자 등 표지석의 일부를 손보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위 “결국엔 상당공원에 세울 것”
어찌 됐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추모열기가 전국 어느 곳보다도 뜨거웠던 충북에서 표지석이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것에서 추모위 관계자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추모위 관계자 Q씨는 “제3의 장소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위원들도 확인하려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서민의 편에 섰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이렇게 매도되는 것이 가슴 아플 따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Q씨는 또 “상당공원이 아니라면 어디든 임시보관처일 뿐이다. 몇몇이 모여서 다시 비석을 세울 장소에 대해 의견을 나눴지만 각자의 견해일 뿐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추모위에서는 표지석의 새로운 입지로 청주지역 A사와 조계종 교구본사인 법주사 등 사찰들이 유력하게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A사의 경우에는 관계자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고, 법주사는 ‘이왕이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 세우자’는 주장에 따라 순전히 타천으로 거론됐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불교계가 정권과 대립의 각을 세우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불교계와 과거 참여정부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 49재도 고향인 봉하마을에 있는 사찰 정토원에서 봉행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주민 품에 돌려준 청남대도 논의 선상에 올랐으나 청주시가 보인 과민반응처럼 관리주체인 충북도 역시 부정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 배제되는 분위기다. 이밖에 표지석을 노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로 보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지역의 추모정신을 담은 만큼 지역에 둬야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는 전언이다.

김연찬 노무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장은 25일 전화인터뷰에서 “원래 지난 주(22일)까지 입지를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예기치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모든 의사결정이 미뤄진 상황이다. 그래도 이번 주(29일) 안에는 A사와 법주사, 청남대 등을 놓고 결정을 내릴 것이다.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B스님 “그분이 친일파냐 매국노냐”
추모위 관계자들은  아직 입지를 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표지석은 A사에 봉안될 확률이 높다. A사는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봉안식 날짜와 구체적인 설치장소, 당일 봉안의식의 내용까지 결정한 상황이다.

A사 B주지스님은 “납골묘도 아니고 순수한 추모비일 뿐인데 이념적 색깔을 칠해가며 상당공원 설치를 반대한 보수단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분이 친일파냐 매국노냐, 상당공원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때까지 우리 사찰에 표지석을 모셔놓겠다”고 밝혔다.

B스님은 또 “정치이념을 떠나서 전직 대통령의 추모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그 영혼이 구천을 헤매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꼈다”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를 판단하는 통합과 소통의 수준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봉안식을 30일에 거행하는 것은 이날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00일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불교식 장례는 49재로 마무리되지만 불교에서 엄밀한 의미의 탈상은 100일째 되는 날 올리는 100재(百齎)로 마무리 된다.

B스님은 “상식적으로도 죽음은 화해와 용서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단체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이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 있는 시민분향소를 폭력으로 철거하는데도 경찰이 이를 눈감아 준 것에서 예견된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B스님은 “정치시계가 1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진보와 보수는 상생할 수도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좌익과 우익은 대립하는 개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생은 없고 대립만 남아있는데 이는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라고 단정했다.     

노 전 대통령 표지석이 봉안되는 청주지역 사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당일 발생할지도 모르는 보수단체의 방해 때문에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다. B스님은 “사찰은 공공장소가 아니니 시비를 걸 대상이 아니다. 노무현을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정성이 모여 건립되는 표지석이니만큼 시비를 걸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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