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떠나간 故 한운사 선생의 고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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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처럼 떠나간 故 한운사 선생의 고향이야기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9.08.19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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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청안 출신, 청주상고 졸업 ‘충북인연’곳곳에
문학계, 괴산군 한운사 전시관 건립 여부 관심 집중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한운사 선생이 지난 11일 별세했다. 청주상고 3회 졸업생인 그는 청주상고가 인문계고인 대성고로 교명을 바꾸자 원로선배로서 직접 자작시를 지어보냈다. 현재 모교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담배 연기 훅 뱉으며 대답하리라. “위로 먹고 아래로 배설하는 거지.” 배설이 너무 고급스러운 말인가? ‘싸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겠다. “한 가닥 구름 이는 것이 태어남이요.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 그쪽이 훨씬 품위 있겠다.

지난 11일 별세한 고(故) 한운사 선생(86)은 그의 자서전 <구름의 역사>에서 이렇게 유언을 남긴다.

충북 괴산 청안이 고향인 한운사 선생은 서울대 불문과 재학시절인 1948년 방송작가로 데뷔해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한국 방송계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드라마 작가였다. 운사(雲史)는 그가 지은 필명이고, 본명은 간남이다.

그는 한국 방송작가 1세대로 꼽히며 최초의 TV 일일극 ‘눈이 내리는데’(1964)를 비롯해 드라마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0)와 ‘빨간 마후라’(1962), ‘서울이여 안녕’(1971) 등을 집필하며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 또 새마을 운동 주제가인 ‘잘 살아보세’(1966)와 ‘빨간 마후라’(1965), ‘레만호에 지다’(1966) 등 대중가요도 직접 작사하는 등 전방위적인 활동영역을 자랑했다.

지난 2006년에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 총 110화에 걸쳐 연재된 글을 모아 자서전 <구름의 역사>를 발간하며 생을 다하기까지 펜을 놓지 않는 열정을 과시한다.

<구름의 역사>는 한운사 선생의 스무살 시절부터 여든이 넘는 60여년에 이르는 세월을 삽화형식으로 풀어낸다. 일제 강점기에는 학도병으로 끌려가고, 6.25전쟁 때는 피난 가지 않고 서울에 있다가 빨갱이로 몰려 죽을 뻔하고, 이승만 정권 때는 북에서 내려온 친구 때문에 간첩 방조죄로 옥에 갇혔던 일화들이 수록돼 있다. 그가 살아온 ‘구름의 역사’에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현대사회의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현 대성고에 세워진 한운사 선생의 시비.
청주상고 3회 졸업생, 시비 건립도

한운사 선생은 생전에 청주와의 특별한 인연을 여러 차례 기고했다. 특히 청주상고 3회 졸업생인 그는 2002년 청주상고가 인문계 대성고로 교명을 바꾸자 원로선배로서 직접 자작시를 지어 보냈다. 현 대성고에 세워진 시비를 통해 그는 모교 후배들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따스함을 주고 싶은 형제, 따스함을 받고 싶은 형제’라며 동문 사랑을 노래했다.

한운사 선생은 해방 전후 3년간 청주상고 교사로도 재직했다. 그의 제자 중 한명이 전 주성대 학장을 역임했던 유성종 씨다. 한운사 선생은 이처럼 청석학원과는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청주상고 학생시절 운동장에 가끔 뵐 수 있었던 김원근 선생의 비문(66년)을 썼고, 청석학원 창립 50주년 때는 설립자 형제의 일대기(77년)를 집필한 <위대한 평범>을 펴냈다.

당시 청석학원 교직원으로 편찬사업을 담당했던 전 박영수 청주문화원장은 그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회고했다.

“1974년 5월 5일이 창립기념일이었는데 3월까지 원고가 넘어오지 않더라. 예전에는 원고지에 글을 쓰고 인쇄소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최소 한 달 전에 글을 마무리해야 됐는데 어찌나 마음이 급하던지. 서울로 쫓아 올라가 한 선생을 호텔에 연금시켜놓고 글을 쓰게 했다. 그런데 한 선생은 4월이 돼도 글을 한 줄도 안 쓰고 놀러만 다녔다. 그래서 도저히 출판이 불가능해보여 사표 쓰러 내려간다고 하니 한 선생이 나를 설득하더니, 그때부터 일주일에 천매씩 글을 썼다. 인쇄소 책상에서 소주를 마시며 나머지 원고를 써서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책이 나왔다.”

한운사 선생은 “예술은 긴장의 소산”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다고. 극한점에 올랐을 때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던 셈이다. 박영수 원장은 “한 선생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문장가였다. 그는 방송작가라고만 불리는 것을 싫어했는데 문학적 활동영역이 방송에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드라마에 그려진 내 고향 충북사람
알고보면 한운사 선생이 쓴 드라마에서 충북사람은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아로운 전(傳) 3부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현해탄은 말이 없다><승자와 패자>의 주인공인 아로운은 청주사람이다. 책을 보면 아로운이 경찰과 헌병대의 조사를 받으면서 충청북도 청주출신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어째서 유순하기 짝이 없는 충청도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한운사 선생은 청주문화원이 펴낸 수필집 <내사랑 청주>에서 이러한 연유에 대해 밝힌다. “청주사람은 외면상으로 순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기막힌 궁지에 몰리기 전에는 그들은 억지를 쓰거나 난폭하게 구는 소질이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 심성 어디 가겠느냐다. 이따금 청주에 가보고 그 변화에 놀란다. 그러나 타고난 그 참을성, 인정이 어디 가겠느냐가 나의 청주에 대한 애정이다.”

충청도 사람은 늘 식모로 나왔던 드라마의 속설을 뒤바꾼 셈이다. 그는 충청도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종종 고향 후배 문인들의 출판기념회에 강사를 기꺼이 맡기도 했다. 한운사 선생은 14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충효공원에 안치됐다. 구름처럼 그렇게 우리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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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사 전시관 건립 수년 째 지연
괴산군 “구체적인 계획 안 나왔다”답변만 되풀이

괴산군은 수년 전부터 청안면 금신리 2만여㎡의 터에 사업비 48억원을 들여 기념관과 자동차 전용극장, 조각공원 등을 갖춘 ‘한운사 영상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국·도비 등 예산 확보 문제와 군수가 바뀌면서 이 사업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시 군은 한운사 전시관이 건립되면 고인의 출생지인 청안을 문학의 고장으로 발전시켜 후배 문인을 비롯한 관광객 유치, 지역홍보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도 꾀할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군은 “생전 작가의 문학관을 건립하는 예가 없다”며 사업을 지연시켰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1일 한운사 선생의 별세로 이 사업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군은 원칙적으로 고(故) 한운사 선생의 육필원고 등을 전시할 공간을 그의 고향 괴산군 청안면에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괴산군은 도비 3억5천만원과 군비 5억원 등 모두 8억5천여만원을 들여 그의 생가가 있는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470번지 2천205㎡의 터에 지상 2층, 연면적 200여㎡의 전시관을 오는 2011년까지 건립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이러한 보도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군 관계자는 “아직까지 전시관이 될지 문학관이 될지 구체적인 방향이 나온 것이 없다. 이전 계획들이 발표된 것일 뿐이다”는 것.

이에 지역 문인들은 “충북이 낳은 문인을 조명하는 데 소홀한 것은 지역의 훌륭한 콘텐츠를 버리는 일”이라며 문학관 건립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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