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 (18) -영국사

중앙공원에는 청주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오늘도 그 자리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청주 시민에게는 ‘압각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동군 천태산에도 청주 압각수 만큼이나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영국사(寧國寺) 를 언제나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하늘이 높아지는 이맘때가 되면 누런 은행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뤄 찾는 이에게 즐거움을 더해 준다.

천태산 자락에 살포시 감춰진 영국사는 찾아가는 입구부터 여느 절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다.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언제 절이 닿으려나 할 쯤에 햇살 쏟아지는 작은 논과 밭 뒤로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여준다.

은행나무의 발견에 기뻐하며 가까이 다가서면 그 뒤로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살포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마치 절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처럼 느껴지는 은행나무는 영국사의 종(鐘)을 대신하여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은행나무 주위를 돌아 절로 들어서면 아이들도 모두 아! 이런 곳에 절이 있다니, 하고 놀라게 된다.

결코 크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왠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절의 오랜 역사 때문일까?

영국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여 당시에는 국청사라 불렸다. 그러다 영국사로 불리게 된 것은 공민왕 때부터라고 한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수도인 개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공민왕은 신하들과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피난을 가야만 했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이들과 당시 임금이 되어 비장한 심정을 말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공민왕은 당시 자신이 머물던 곳에 가까이 있던 국청사에 들려 간절한 마음으로 나라가 평안하기를 빌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공민왕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 백성을 괴롭히던 홍건적은 물러가고 공민왕은 무사히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라의 평안을 빈 절이라 하여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

그리고 당시 절 아래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임금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다니기 편하도록 산 위의 절까지 칡넝쿨로 다리를 엮어 매달아 주었다고 해서 누교리라는 지명을 얻기도 했다.

은행나무를 지나 대웅전을 오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웅전과 일직선상에 있어야 할 탑이 왼쪽으로 살짝 비켜 있다.(대웅전을 중심으로) 그렇다면 대웅전과 탑 중에 어느 것이 자리를 옮긴 것일까? 아이들과 자세히 살피며 그 증거들을 찾아보자.

영국사는 이름의 유래나 커다란 은행나무만큼이나 귀중한 보물이 곳곳에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고 있는 삼층석탑과 고려시대 천태학의 대가였던 원각국사의 행장을 적은 원각국사비가 있다. 또, 주인을 알 수 없는 팔각원당형의 부도도 그 옆에 자리하고 있어 볼거리를 더 해준다. 이즘에서 아이들에서 탑과 부도의 쓰임과 차이점을 알려주며, 준비한 필기도구로 직접 그려보게 하자. 그림을 그리려고 탑과 부도를 자세히 관찰하다보면 어느새 조상들의 빼어난 솜씨와 숨결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아야 할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절 앞으로 약 500m쯤 떨어진 곳에 망탑봉이라는 봉우리에 있는 탑이다. 이 봉우리는 산아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탁 트인 시야로 가슴이 시원해지는 이곳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로 적의 침입을 망보던 곳이라 하여 망탑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위에는 큼직큼직한 바위들이 울둑불둑 솟아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바위 위에 자연석을 기단으로 삼아 만들어진 삼층석탑이 서 있다. 수려한 솜씨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봉우리에 우뚝 솟아 비바람을 그대로 맞고 서있는 탑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투박하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탑이다.

망탑봉을 지나 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내려오다 보면 진주폭포를 만나게 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길이 무척 위험에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곳곳에 튼튼한 동아줄을 엮어 놓아 아이들은 내려오는 내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요즘 편리함에 길들여져 조금 힘든 곳은 가려고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에게 영국사는 가을의 정취와 역사 그리고 산행의 즐거움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용어풀이
탑: 부처의 뼈나 사리 등의 유품을 안치하기 위하여 세운 건축물
부도: 고승이 사리나 유골을 넣고 둥글게 쌓은 건축물
천태학: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열어 놓은 불교 종파의 하나.
영국사 위치: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교통편: 영동 읍내에서 영국사 입구를 거쳐 누교리/명덕리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여섯차례 있으며 영국사 입구에서 하차 후 영국사까지 1시간 정도 걸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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