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일부 신문사는 농촌 자치단체의 경우 기자 한 명이 두 곳 이상을 맡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옥천군과 영동군을 묶어 1명이 담당하거나 보은군과 영동군을 주재기자 한 명이 전담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신문사의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요즘엔 드문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엔 1개 시·군은 1명의 주재기자가 담당했고 예외적인 상황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괴산군과 증평출장소를 동시에 맡은 적이 있습니다. 증평군의 전신인 증평출장소는 충북도청의 직속 기관으로 자치단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두 개 자치단체를 1명이 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신문사는 증평출장소와 괴산군을 분리해 1명씩 주재기자를 임명한 반면 제가 근무하던 신문사와 충청일보는 괴산군과 증평출장소를 묶어 한 명이 담당했습니다.

군으로 승격하기 이전의 증평출장소는 괴산군에 대해 자존심 경쟁이 대단했습니다. 오죽하면 증평출장소 간부 공무원들이 출장소장을 ‘시장’으로 호칭하면서 농촌지역인 괴산군의 군수보다 도시지역인 증평출장소장이 은근히 더 낫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현재도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증평지역은 행정만 분리되고 경찰서와 교육청 등 주요 기관은 괴산지역에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괴산지역과 증평지역을 묶어 담당하고 있는 제 입장에선 괴산군에 주로 머무르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증평출장소 측에서 서운한 감정을 표명해 나중엔 오전엔 증평출장소 기자실에 있다가 오후엔 괴산군청 기자실로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해도 주요 기관이 집중된 괴산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증평출장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장기화됐고 괴산지역과 증평지역 주요 기관장 오찬이 겹칠 땐 어느 한 곳을 선택할 수 없어 점심을 두 번씩 먹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지금도 충청일보 이종욱 선배와 제가 증평의 한 식당에서 부리나케 점심을 먹고 다시 모래재 고개를 넘어 괴산의 식당에서 또 다시 밥을 먹은 것이 기억납니다.

저의 입장에선 괴산과 증평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뿌듯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괴산과 증평이 서로 자신들의 지역으로 기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점심을 두 번씩 먹는 기자들의 모습은 최근의 관점에서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HCN충북방송 보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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