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접근론과 때려잡자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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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접근론과 때려잡자 김정일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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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에 송두율교수가 주창한 하나의 분단이론, 이른바 '내재적 접근론'이 지난 며칠간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급기야 국회 심규철의원이 대검찰청 국감에서 "주한미군철수, 한총련, 안티조선운동 등에 내재적 접근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요지의 질문을 던졌다가 안티조선의 성지인 옥천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광의로 해석해 북한을 있는 그대로(what it is)로 봐야 한다는 내재적접근론은 냉전적 사고가 지배하던 당시만 해도 그야말로 빨갱이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북한정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있는그대로 봐준다'는 금도(?)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가. 

심규철의원에게 한가지 충언한다. 사상이나 이념문제를 그렇게 경박하게 입에 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지금이 6, 70년대였다면 심의원의 그 말 한마디는 아마 여러명을 작살냈을 것이다.

 1995년쯤으로 기억된다. 수해를 당한 북한에 남한 정부가 최초로 쌀을 지원한 적이 있다. 이 때 남한 기자들의 행태는 마치 먹이감을 좇는 사냥꾼과도 같았다.  분단 현장으로 쌀을 인수하러 온 북한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며 그들의 면면을 기사화하는데 열을 올렸다. 북한의 운전기사가 신고 온 운동화가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조악하다느니, 트럭의 타이어가 낡을대로 낡았다느니 이런 식의 기사가 남발됐다. 이런 보도를 접한 국민들이 느낀 감정이란 비교우위를 훨씬 넘는 "저네들은 우리가 상종할 수 없는 미개인"이란 인식정도의 우월감이었다. 

 북한에 대한 언론의 마녀사냥은 그후 정도를 더해갔다. 북한 현지 주민에게 바캉스를 나녀왔냐고 물어 "묘향산으로 다녀 왔다"는 답변이 나오자 언론은 북한주민을 바캉스도 모르는 하급인간쯤으로 취급했다. 북한에선 바캉스라는 말이 사용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굳이 외면한채 말이다.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물든 한국적 시각에서 북한을 재단한 것이다.  

 얼마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있었던 해프닝.  김대중-김일성이 손잡은 사진이 실사된 현수막을 "비맞는다"며 신주단지 모시듯 걷어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당혹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이런 광경을 그들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주관에서만 해석한다면 그들은 분명 어느 먼 옛날 개미나라의 미물(개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선 아직도 맨손으로 밥을 먹는 인도 등 서남아인들은 영락없는 미개인이다.  이런 오만한 주관이 바로 이라크를 해방시켰다고 길길이 좋아하던 미국의 관점이었고,  이런 편견이 잘못됐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쟁이 끝난 지금  당사자인 이라크 국민들이  되레 갖은 무력공격으로 미국에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북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총체적으로 객관적 시각을 갖게 되기까지는 어쨌든 DJ 햇볓정책의 영향이 컸다. 적어도 기껏 통일하자고 해 놓고 과거처럼 '때려잡자 김정일"을 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수구세력의 준동으로 한국은 또 한번 빨갱이 컴플렉스를 겪어야 했다.  정형근 등  일부 매카시스트의 자해극이 국민들을 선동했지만 남한의 '정신'은 이젠 이런  미혹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많이 성숙했다.   송두율의 내재적접근(immanent approach)론은 어찌보면 이런 양쪽의 체제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우리사회에 냉전논리가 기승을 부리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남한과 북한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분단의 극복을, 고민하는 지식인의시각에서 통찰한 독일작가 루이제린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재적 접근론은 사실 이때 남북한을 왕래하며 체제의 모순에 온 몸으로 부딪친 이 작가에게도 이미 체화됐는지 모른다. =북한은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것을 향해 가는 도정에 항상 있으며 이를 우리는 선입관없이 직시해야 한다. 단지 선입관없는 시선만이 사실을 올바르게 보고 거기서 진리를 발견한다. ===

 그러나 기자는  내재적 접근론의 원조를 한국의 토종학자로부터 찾고자 한다.  유신체제가 서슬퍼렇던 70년대에 강만길이 설파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읽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 유신정권이 철저히 금기시했던 용기있는 주장. =분단현실을 외면하는 국사학은 그것이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하는 길이라 할지 모르지만, 우리(나)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학문적 객관성과 학문의 현실도피성이 혼돈된 것이며, 분단체제를 긍정하고 지속하는데 이바지하는 국사학은 학문의 현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분단현실에 매몰되어 버린 학문이 아닌가 싶다===  양심의 입이 틀어막히던 폭압의 시절에 비록 에두르는 말일망정 힘겹게 쏟아냈던 '진리'가 지금 천박한 매카시스틀의 주둥이 때문에 빨간페인트의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이들 빨간 바이러스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회적 혼란을 반긴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바이러스의 속성상 그들의 더듬이는 항상 혼돈과 혼란에 맞춰져 있다.  국회내 수구파들이 틈만나면 남북분단과 냉전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이런 바이러스의 속성에 기인한다. 그들에게 내재적 접근론은 영낙없는 빨갱이들의 소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역시 분단의 처절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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