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직지원정 대장

얼마 전 히말라야의 차디찬 눈밭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산악인이 영원히 히말라야의 품에 안겼다.

고 지현옥산악인에 이어 오은선산악인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산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낭가파르밧(8,125m) 정상을 올랐다는 낭보가 전해진지 하루 만에 들려온 실족뉴스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했다.

국내 최고의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에서 고산등반을 시작한지 2년9개월 만에 8,000m봉 11개를 등정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고미영씨다.

특히 오은선 대장과의 8,000m 14좌 경쟁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고 흥미였다. 고미영씨는 앞서가는 오은선씨를 제치고 먼저 14좌를 마치려고 끊임없는 추격전을 벌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경쟁을 염려해서 여성산악연맹에서는 두 명의 여성 산악인을 불러 올해 마지막 등정이 될 안나푸르나를 동시에 등반하기로 합의해 놓았다. 이제 그녀가 갈망하는 14좌의 세 개봉우리를 남겨놓고 그녀는 낭가파르(8,125m)밧의 품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그녀는 26살의 나이에 너무 불어나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고, 어느 주말 북한산을 오르다 백운대 부근 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어느 산악인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그 분의 권유로 노량진의 클라이밍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암벽등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억척스럽게 운동한 결과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니던 직장까지 정리하고 유럽으로의 유학길에 오른 후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국내에 들어와 국내의 클라이밍계의 지존을 지키며 후진을 양성하다 히말라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 그녀는 히말라야의 14좌 레이스에 뛰어들었고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다 멈추어선 것이다.

무엇이 이 산악인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하였을까? “혹 기록을 우선시하던 스포츠인으로서 산을 대하며 기록에만 열중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소속된 업체의 이익을 대변하기위해 사지로 내몰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산을 산으로 대하기보다는 경쟁에서 승리해야할 도구로 본 것은 아닐까?”하는 수많은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필자는 고미영 산악인의 순수한 의지와 끊임없이 추구하는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이제 우리의 품에서 영원히 떠났지만 그녀는 그토록 갈망하던 히말라야의 설원에서 히말라야의 신들과 함께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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