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청주 송절중 교사

이상한 일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그때도 야만의 시대에 대한 분노에 치를 떨며, 때로 무력감에 절망하며 쓴 소주로 분을 삭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YH사건, 동일방직 사건, 부마항쟁.... 도처에서 억울한 죽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시인 김수영은 그때의 지식인으로서 자괴감과 분노를 ‘시여 침을 뱉어라’ 라고 절규했다.

2009년의 용산은 1969년과 2003년의 청계천을 닮았다. 헌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철거민들, 무대책으로 세입자들의 보상을 외면하는 정부의 정책이 동일하다. 군사작전을 하듯이 용역깡패들과 함께 무자비한 진압을 강행하는 경찰, 도심속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참혹함도 닮아있다. 그때 박형규 목사의 길거리 예배를 백색 테러하던 그들은 오늘 문정현 신부가 거리에서 집전하는 용산 추모미사에 난입하고 폭행한다.

용산 참사 반년을 맞은 20일, 유족과 용산범대위는 사과는커녕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노력조차 않는 정부에 대해 “시신을 안고 청와대까지 가겠다”며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고, 경찰은 병력을 동원하여 고인들의 시신이 있는 순천향대 병원을 봉쇄했다. 책임의 당사자인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벽창호 같은 태도조차 빼 닮았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점거농성중인 쌍용자동차 공장 노동조합의 옥쇄파업도 사태의 발단이 ‘먹튀자본’이라는 점에서 1979년의 YH사건과 본질적으로 닮았다. 임금마저 체불한 채 폐업하고 미국으로 튀어버린 사장을 잡아달라고 YH노동자들은 야당 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경찰은 도망간 사장은 잡지 않고, 도리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강제 해산하려 야당당사를 난입하였다.

현재 쌍용 자동차 공장안에는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옥쇄파업’을 선언하고 농성하고 있으며, 법원의 강제집행이 시작된 20일 오후에는 한 노조 간부의 부인이 자살했다. 경찰은 공장을 둘러싼 가운데 경찰헬기까지 동원하여 강제집행을 시도하고 있다.

언론을 장악하여 정권의 통치도구로 이용하려는 발상도 역시 닮았다. 당시 1975년의 동아일보 사태와 1980년 언론 통폐합은 강압적으로 언론을 길들이고 통제 하려는 것이었다. 다만 현 정부는 ‘미디어법’을 추진을 강행하여 조중동 신문과 재벌에게 공중파 방송의 대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줌으로서, 경영권을 쥐게 된 그들을 통해 자율적으로 방송을 순치시켜 언론을 장악하려는 교묘한 의도라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아직도 음습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매카시즘적 마녀사냥도 그때를 닮았다. 노동조합도, 사회운동이나 인권운동도, 친북 좌익이거나 그들에게 배후조종당하고 있다고 덮어씌운다. 심지어 야당의 정당활동 마저도 ‘빨갱이의 앞잡이’로 매도한다.

그때,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빨갱이’ 김대중과 좌익세력의 선동으로 일어난 소요사태로 매도한 것처럼,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언론계에 스며든 일부 좌익세력의 여론조작과 선동에 의해 일어났다고 강변한다. 마치 30년 전의 흑백 ‘대한 늬우스’를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그 기억조차 암울했던 과거로 어느새 다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때 그들은 그 시대를 좌익과 우익으로 구분하고 싶어 했지만, 돌이켜보면 좌우의 이념문제가 아닌, 독재와 민주, 정의와 불의의 문제였음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이 정국도 이념의 문제가 아닌 독재와 민주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새삼스럽게도 인권과 정의에서 발로한 반독재 민주 대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