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대표이사

청주 상당공원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 설치가 무산됐다. 청주시 도시공원위원회는 지난 20일 "추모 표지석은 공원시설 심의대상이 아니다"며 논의조차 거부했다. 이에앞서 청주시는 유도성(?) 설문지를 통한 시민 전화여론조사를 통해 상당공원 설치반대 의견이 62.8%에 달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상당공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직후 시민분향소가 설치돼 5만명(시민추모위 추산)에 달하는 시민들이 조의를 표한 곳이다. 시민추모위원회는 역사적 추모현장에 표지석 설치를 원했지만 청주시와 보수단체의 반대에 부딪쳤다.

시는 공원내 설치요구 민원을 진작 처리하지 않다가, 시민추모위가 제막식을 갖기로 한 49재 전날 직원들을 동원해 상당공원을 에워쌌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까지 가세해 취재진과 시민단체 활동가에 폭행을 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우여곡절끝에 인접한 천주교 수동성당에 임시 설치했지만 교계 내부의 이견때문에 언제까지 버틸 지 장담못할 상황이다.

이번 추모표지석 ‘저지 작전’에는 경찰도 한몫했다. 추모석을 제작하는 작가와 좌대를 만드는 작업실에 정보과 형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려 임신한 아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상당공원에 모인 보수단체측 인사는 ‘경찰에서 연락받고 나왔다’고 기자에게 천연덕스럽게 얘기하기도 했다.

서거정국에선 입도 벙끗 못했던 청주시와 보수단체들이 49제를 기점으로한 추모사업을 적극 저지하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상 그들이 철저하게 막으려는 것은 돌멩이 표지석이 아니라 ‘노무현’이란 인물이다.

2002년 대선 득표율 48.9%로 당선됐지만 갈수록 인기가 추락한 그때 그 ‘좌파’ 대통령. 상고 출신의 학력, 장인의 빨치산 전력, 친노동자적인 의원활동까지 보수진영에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대통령이었다. 누가 뭐래도, 청주도심 한복판에 그의 추모 표지석이 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비장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청주 중앙공원에 세워둔 ‘5·16 혁명 기념비’는 어떤가. 한국사 교과서에 ‘군사쿠테타’로 규정됐고 당시 현역 군인인 청주시장이 ‘10만 청주시민 일동’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설치했다. 지역의 진보 역사단체가 수차례 청주시에 철거요청했지만 요지부동. 유신정권 당시 정치적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지역에도 여럿이지만 중앙공원 ‘5·16 혁명 기념비’는 오늘까지도 무사하다.

보수-진보의 관점을 떠나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충북과 얽힌 인연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취임후 처음으로 대국민 공약을 실천한 것이 바로 청남대를 충북도에 돌려준 사례다.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 결정과 하이닉스 제2공장 청주 증설이라는 최대 숙원사업의 성공배경에는 청와대 뒷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들도 노무현 정권당시 최대 수혜도가 충북이라는 데 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추모 표지석은 마땅히 세울 곳이 없어 오늘까지도 불안하다.

현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48.7%의 득표율로 유권자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진보진영에서 그의 집권을 애당초 인정하지 못하는 생리적 거부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인 대통령 선거의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럴바에는 향후 헌법개정을 통해 프랑스와 같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검토했으면 한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은 도심 공원이 부적합하다면, 대통령 전용시설이자 고인이 충북도민에 넘겨준 청남대 내에 설치하는 방안을 충북도에 제안한다. 정우택 지사가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대붕(大鵬)의 포용력을 보여줄 기회가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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