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과정, 경찰 밀착 감시에 참여자 임신아내 입원
청주시는 예정대로 상당공원 설치 불허, 파장 확산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일을 지나며 잦아드는 듯 하던 추모 표지석과 관련한 파장이 또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이하 추모위)가 추모기간 동안 모금한 성금으로 제작해 청주 상당공원에 설치키로 했던 추모표지석이 청주시와 보수단체들의 저지로 인근 수동성당에서 임시 제막식을 가졌다.

▲ 보수단체 저지로 상당공원 대신 인근 수동성당에서 임시 제막식을 가진 노 전대통령 추모 표지석, 경찰의 지나친 감시로 인해 제작 참여자의 임신한 아내가 병원 치료를 받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추모위 측은 상당공원 관리권자인 청주시가 허가하지 않는 한 강제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 보수단체와의 충돌 위기는 일단 넘겼다.

하지만 경찰이 표지석 제작 현장과 제작에 참여한 관계자들을 지나치게 밀착 감시하고 심지어 미행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데 이어 21일에는 청주시가 상당공원 설치 불허 결정을 내려 지역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찰 정보관 제작현장 밀착보호?

노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은 자연오석 재질로 반원형 좌대 위에 높이 75㎝, 폭 60㎝ 크기로 청원군의 한 석물공장에서 제작됐다.

제작에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등이 참여했으며 49재일 5일 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앞면은 노 전 대통령의 얼굴 그림과 추모글, 뒷면에는 어록과 추모제 등 사실관계가 기록됐다. 추모비 정면 하단에는 ‘당신의 못다 이룬 꿈 우리가 이루어 가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얼굴그림 아래에는 ‘사랑합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작가 A씨는 직사각형 모양의 기단을 제작했고 또다른 작가 B씨 등이 노 전 대통령 얼굴과 글귀 등을 새기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들은 물론 석물공장 관계자들은 표지석을 제작하는 내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청주 상당·흥덕경찰서는 물론 충북지방경찰청에서 까지 정보 관련 경찰관을 보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했던 것이다.

제작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맡은 부분의 기초 작업을 마치고 7일 석물공장에 모여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는데 평소 보지 못하던 차량과 경찰로 보이는 3~4명이 시종일관 주시하는 것을 확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곳의 경찰서와 충북지방경찰청 소속 정보관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은 보수단체 회원들에 의해 표지석 제작이 방해받거나 충돌할 가능성에 대비해 보호차원일 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변했지만 휴대전화를 통해 일어나는 상황들을 실시간 보고하기에 바빴다”고 덧붙였다.

과거로의 회귀?

이들은 보호차원이라던 경찰이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제작자들을 미행하기 까지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다른 관계자는 “석물공장 주변에는 순찰차를 포함해 3대의 경찰 차량이 상주했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데 슬그머니 따라 붙기 까지 했다. 이같은 상황은 7일과 8일 이틀이나 계속됐고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방향을 바꾸니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또한 “공장을 표지석 작업장으로 내 준 석물공장 주인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데에 매우 불쾌해 하며 당장 (표지석을)가지고 나가라고 요구하기도 하는 등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한 제작자는 임신한 아내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는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번도 누구의 감시를 받아본 일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상주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 보는데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임신 7개월인 아내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등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다행히 아내나 태아에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표지석 설치일인 10일에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됐다. 표지석을 싣고 공장을 출발해 상당공원으로 향하던 차량을 음주단속이라며 경찰이 동승자까지 신분증을 확인하기 까지 했다는 것.

한 관계자는 “이 도로를 매일 통행하고 있는데 오후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음주단속을 한다며 동승자 까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당시에는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지난 일을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상황의 단면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정신적 부담을 주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으며 지시에 따라 직무 규정 안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정보수집 외에도 보수단체 회원 등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눈가리고 아웅’ 여론조사의 뻔한 결과
청주시 노 전 대통령 표지석 설치 최종 불허

▲ 청주시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설문지. 표지석의 상당공원 설치 반대를 유도하고 있는 비판이 쏟아졌다.
청주시가 21일 최종 불허 결정한 상당공원 내 노 전 대통령 표지석 설치는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된 시나리오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시가 추모위의 표지석 설치 예정일인 10일을 앞두고 사실상 고의로 결정을 미뤘고 특정 응답을 유도하는 설문지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표지석 설치에 대해 지난 16일 청주시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ARS를 활용한 CTS방법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건립반대 62.8%, 찬성 28.2%, 잘모르겠다 9% 등으로 나타났다.

시는 이를 토대로 도시공동위원회의 자문을 구했고 위원회는 도시공원위원회의 판단사항이 아니라 청주시가 결정한 사항이라고 사실상 자문을 거부, 최종 불허 결정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시가 불허를 결정한 결정적인 근거가 됐지만 조사 과정에서 조차 편파적인 응답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질문에 대한 답은 3가지 중에 고르도록 하고 있으며 1번안은 봉하마을 건립, 2번안은 상당공원 건립, 3번안은 모르겠다로 응답토록 구성됐다. 하지만 1번안 설명 첫 부분에 ‘표지석은 공원시설로 부적합 하므로’라는 부정적 전제를 제시해 상당공원 건립안에 대한 거부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추모위 김연찬 교수는 “청주시가 의뢰했다는 여론조사 기관이 신뢰해야 할지 모를 생소한 곳인 데다 질문지 마저 편파적으로 작성돼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질문지도 전문가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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