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1987년 6월 29일, 더 이상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대통령을 뽑게 하겠다는 ‘6ㆍ29 선언’이 있었다.

당시 신군부의 제2인자, 노태우 장군이 주도했다.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 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을 실현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 전, 4월 13일,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호헌 선언’을 한 뒤 여론이 들끓던 와중에 민주투사 박종철 군이 고문당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6월 10일 시민대항쟁이 시작된 지 20일만이었다. 그 해 말, 노태우 후보가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2년이 지났다.

2009년 6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주례 연설에서 “임기 내에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2년 전 선언이 간선제 대신 직선제 개헌을 통한 민주화의 기초를 닦은 것이라면, 이번의 선언은 대운하 대신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새롭게 정당화하겠다는 것이다. 22년 전 선언은 국민이 요구한 것을 수용한 것이라면 이번의 선언은 국민이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한다 하면서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구석을 남겼다. 여당과 야당의 비평을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중대 결단을 높이 평가하면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국토재창조와 지역균형발전, 녹색성장 기반 구축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향해 순항할 수 있도록 국민적 지혜가 모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도 만만찮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대통령의 ‘대운하 중단’ 선언을 환영하면서도 “4대강 살리기 예산 중 위장된 대운하사업으로 의심되는 예산을 삭감해 그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잘 해봐야 단순한 수변공원 조성사업에 불과한 것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지원을 하고도 남는다”며 예산 전환을 촉구했다.

또 창조한국당 김석수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16조 원짜리 대운하는 포기했지만 30조 원짜리 4대강 사업은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것은 “36계 중 11계인 적전계를 뜻하는 이대도강(李代挑畺) 즉,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작은 일을 죽이는 전술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정책위의장도 성명을 통해 “4대강 사업은 목표와 효과를 과장하고 환경파괴를 은폐하고 있으며 기초조사를 무시한 졸속처리, 고무줄 늘어나듯 들쑥날쑥한 재원계획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의 김종철 대변인은 “4대강 개발사업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전형적인 20세기형 개발사업에 다름 아니며 4대강에 콘크리트를 퍼붓겠다는 것은 아파트형 4대강을 만들겠다는 것과 같다”며 “확실하게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20조가 넘는 예산을 고용창출에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오늘의 6.29 선언은 22년 전 민주화 선언의 결과 다수 국민이 “경제를 살려 달라”며 직접 뽑은 대통령에 의해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국토재창조와 지역균형발전, 녹색성장 기반 구축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가진 ‘살림의 경제’인가 아니면 “환경 파괴와 여론 무시, 국론 분열”을 초래하는 ‘죽임의 경제’인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일이라면 그 어떠한 돈이 들더라도 꼭 해야지만, 반대라면 당장 중단해야 옳다.

22년 전 6.29선언에서 공언한 바, “모든 국민 개개인이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위대한 나라’를 열어 가는 전환점”을 지금이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는 분별력부터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또 다른 ‘선언’이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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