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대표이사

청주시 수곡동 대한주택공사 충북본부와 청주교육대 앞 도로변에 만장처럼 내걸렸던 펼침막들이 53일만에 자취를 감췄다.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주)의 대표이사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던 거리천막도 철거됐다. 지난달 29일 우진교통과 주택공사가 사태해결을 위한 공식 합의문을 작성하면서 길고 긴 생존권 투쟁의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서울 집회현장의 단골메뉴(?)인 과잉 공권력 시비도 없었고 10여차례에 걸친 노동자들의 거리행진도 별다른 충돌없이 진행됐다. 주택공사 충북본부는 2개월간의 건물앞 천막농성과 집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 투입 요청을 자제했다.

청주시는 해법을 찾기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하며 조정자 역할을 완수했다.
현 정부 출범이후 노동시장 유연성을 내세운 정책으로 노사간 대립갈등의 파고가 높아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청주시와 주택공사가 위기에 처한 노동자 기업의 회생을 위해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가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우진교통(주) 또한 ‘최종 합의’에 대한 고마운 심정을 담은 서신을 지역 각계 인사들에게 발송했다.

도내 최대 규모의 시내버스 운송업체인 우진교통(주)는 지난 2005년 1월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충북 1호로 재탄생했다. 사업주가 경영악화로 장기간 임금체불 사태를 빚었고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체불임금을 포기하는 대신 부실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 결국 노동조합이 회사의 경영주체가 됐고 지역 노동계의 핵심 브레인으로 통하는 민주노총 충북본부 김재수 사무처장을 대표로 영입하게 된다.

화이트칼라 노조도 아닌 ‘기름밥’ 먹던 노조가 260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정상운영할 수 있을 지 불안한 눈길이 많았다. 노동운동가에서 경영인으로 탈바꿈한 김 대표는 박봉을 감수하며 버스 노동자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투명한 입찰을 통해 원가부담을 줄이고 복대동 차고지를 매각하는등 경영합리화를 통해 150억원에 달하는 악성부채중 60여억원 이상을 3년만에 상환했다. 청주지역 시내버스회사가 고유가로 인한 경영악화를 호소하며 임금체불하던 때에 오히려 우진교통은 차곡차곡 빚가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기업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온 노노갈등을 우진교통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일부조합원들의 경영진 고소사태가 발생하면서 노조 내부는 물과 기름으로 양분되는 사태를 맞게됐다.

마침내 지난해 4월 조합원 60여명이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40억원에 달하는 체불임금·퇴직금 지급을 신청하게 된다.

최대의 경영위기에 몰린 우진교통은 남은 조합원들이 6개월간 임금을 받지않고 버티며 또한번 위기를 극복했다. 임금체불 시기였던 지난해 7월에는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임금결정위원회’ ‘인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노동자 스스로 임금을 정하고 과오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출범 3년여만에 제도적 완성을 선언한 셈이다. 아울러 우진교통 구성원들의 숙원이었던 차고지 문제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돼 경영 효율화에 큰 전기를 맞게 됐다.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서울월드컵 4강 신화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우진교통(주)의 회생 신화는 결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비마다 ‘꿈은 만들어 가는 것’ 임을 실증했다.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의 꿈이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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