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하 (청주YWCA상담실장)

지난 주말에 친척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그곳에서 집안 어른으로부터 걱정의 말씀을 들었다. 이유는 호주제폐지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 어른께 내가 운동을 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를 말씀드리면서 어느새 여성운동가가 돼버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담소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어머니들의 사연은 저마다 절절하다. 내남자들의 문제는 대부분 개인의 노력이나 인내로 극복되기 어렵고, 철저한 자기 희생이 강조되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로 인하여 가족 갈등이 반복된다.

단편적인 예로 할머니가 집안의 큰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제도가 매겨놓은 서열 때문에 젖먹이 손자 아래로 밀려나 있다. 심지어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서 낳아온 아이가 자신의 호주가 되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다보니 임신한 여성들은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 아니라면 ‘낙태’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에 시달린다. 그러한 가족구조 속에 여성은 종속적이고 희생적인 역할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 되어 가고 있다.
또한 같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남으로 인해 신선한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난 9월 말에 여성을 위해 일하는 시설관계자들과 한 팀을 이루어 뉴질랜드와 호주의 복지시설 6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오클랜드의 위기여성센터, 크라이스처치의 여성센터, 주 뉴사우스웨일즈 여성국, 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등이었다.

그곳에서 특별히 인상깊었던 일은 가는 곳마다 피해 여성들을 돕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것이며,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기관에서 우리나라 교민이면서 위기여성센터에 나와 자원봉사를 하며 우리나라와 아시아 여성들을 돕는 분들도 몇 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자원봉사자는 일하는 기관의 보조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일을 하는 이 분들에게서 따뜻한 자매애와 진정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준비된 여성인력이 손을 뻗쳐야 할 부분이 많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도 필요하고, 잘못된 사회제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바른 정책이 되도록 여론몰이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일터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불평등보다는 평등을, 차별보다는 사랑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회를 다함께 만들어 가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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