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최근 실시한 명예퇴직에 5500명이나 몰린 ‘사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KT는 명퇴를 실시하면서 파격적 위로금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KT조차 “예상외의 위로금이 대규모 명퇴신청을 낳았다”고 시인할 정도다.

KT 충북본부는 “불투명한 경영환경에 대비, 구조조정 차원에서 명퇴가 이뤄졌지만 이 참에 정부가 고민하는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에 동참하자는 경영진의 판단도 있었다”고 전했다. 획기적 인센티브-대대적인 명퇴를 통해 청년실업에 바늘구멍이나마 숨통을 트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효과가 얼마나 될 지 현재로선 미지수지만.

아울러 이 과정에서 인상적인 것은 KT 노조의 반발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긴 막대한 위로금이 반대급부로 제공되는 마당에 노조 측이 반대할 명분을 찾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번 소식을 접하며 일용직과 비정규직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대단하다. 사회진입의 문턱에서부터 좌절감에 싸인 숱한 청년 실업자들의 피해의식은 말할 것도 없다. 노조 결성률이 12%도 안 되는 속에서 대기업보다 훨씬 못한 임금과 근무여건을 감내하고 있는 중소기업 근로자들 역시 감정이 여간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노동계 등을 대상으로 한 잇딴 발언이 주목을 끌고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노총 및 한국노총 지도부와 잇따라 가진 모임에서 “경제가 어려우면 분배도 악화된다.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분배”라는 말을 했다. 대통령은 또 ‘아세안+ 3정상회의’ 참석 차 방문한 인도네시아에서 교포들에게 “과거 본인의 노동운동이 심했다는 생각도 든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분배 우선적이고 친노(親勞)적 성향을 보여온 현 정권의 가치체계에 비춰볼 때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로 읽혀질 만한 대목이다. 대통령은 ‘선성장-후분배’를 역설하는 동시에 일부 대기업 노조의 과격투쟁과 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가 일자리 축소-실업자 양산을 낳는 등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일련의 발언에 대해 아직 경제계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는 분위기다. 대통령 ‘말씀’이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아 왔다는, 미덥지 않은 경험칙 때문이다.

얼마 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지역출신 벤처 기업가는 기자에게 “경제성장률이 4%가 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치가 올 초 나왔을 때 경제부처의 테크노크라트들 사이에선 ‘이 정도면 사실상 제로성장’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왔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경제주체들 사이에 퍼져 있으며, 한국이 개인소득 2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선 삼성전자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을 8개 정도는 키워 향후 7∼8년 이상 고도성장을 해야만 한다는 전문가 사이의 담론이 무성하다”는 얘기도 소개했다.

정부는 요즘 우리 경제를 옥죄는 카드 빚 문제 해결을 위해 신용불량자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자칫 또 다른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 직면하고 있다. 이 때문일까. 경제계의 소박한(?) 희망이 여운을 남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경제운용의 철학이랄까 가치관을 시장에 명확히 보여주는 일이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 이보다 더 확실한 경기 부양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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