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작열하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몸과 마음을 깨우는 짙푸른 신록처럼 그렇게 청춘을 보내고 싶은 6월이다. 해는 길어지고 녹음이 우거질수록 산 그림자는 짙어만 가며 적막강산에 흰 구름이 스르르 치마 벗듯 넘나드는 6월이다.

여름 햇살은 시원한 바람과 만나야 하고, 이름이 있건 없건 향기 머금은 꽃들은 꿀벌을 만나야 하며, 지나가던 길손은 막걸리 한잔의 후덕한 인심과 만나야 하고, 밭을 갈던 늙은 소는 싱그러운 쇠꼴을 만나야 에너지가 생기며, 콘크리트 도회의 척박한 삶에는 옛 추억과 느림의 미학이 있어야 사람 사는 맛이 생긴다.

바쁠수록 쉬어가고, 스스로의 아집과 자만에 고립돼 있을 때는 일상의 탈출이 필요하며, 온실의 화초는 건강한 햇살을 만나야 싱그러운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치, 이 땅의 오래된 소나무는 끊임없이 빛과 바람, 비와 눈보라에 단련되면서 늘 낭창낭창한 기운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초정리를 잠시 들렀을 때 우리 집은 물론이고 아래윗집을 오가며 지붕과 처마 밑을 흩어보았다.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얘기에 매년 초정리를 찾아오던 제비 소식이 궁금해서다. 9월 9일 중양절에 초정리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꿈과 소망을 싣고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는 이듬해 3월 3일 삼짇날 돌아왔다. 제비는 지난해 살림을 차리고 생활했던 바로 그 둥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지배배’ 우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미끈한 몸매와 날렵한 곡선 비행을 자랑하던 그 제비가 둥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대충 살아가는 누더기 같은 인생이 아니라 자신들의 터전을 꼼꼼히 점검하고 보수하면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비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대고 쟁기질과 써레질을 할 때 수직하강한 뒤 볏짚과 진흙을 한 잎씩 물고 힘찬 날개짓으로 솟아오른다.

때로는 송사리 같은 물고기를 낚아채기도 하는데 그 때의 순발력과 공중묘기는 농부들에게, 어린 아이들에게 정겨운 휴식이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건져 올린 볏짚과 진흙은 제비집을 보수하고 다듬는데 쓰여진다. 신비로운 것은 제비의 입안에서 나오는 그 무엇 때문인지 논두렁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아담하고 정갈한 둥지를 만든다.

알을 품고 어린 새끼를 낳게 되면 제비는 더욱 분주해진다. 새끼들을 위해 벌레를 물어다 줘야 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느라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한 여름 땡볕으로 가득하던 어느 날, 처마 밑의 제비집에 낯선 손님이 침입했다. 어린 소년의 팔뚝보다 더 굵고 큰 구렁이가 둥지에서 어미를 기다리며 재재거리던 새끼들을 속절없이 삼켜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엄청난 사건에 소년은 경악을 했고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을 망하게 할 놈”이라며 지개 작대기로 구렁이 목을 졸라 죽였다. 구렁이 밥이 돼 버린 제비새끼의 운명과 자식의 죽음을 멀리서 울부짖으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어미새의 분통함, 그리고 스쳐가는 작은 일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시리고 아팠던 사건을 지켜본 어린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초정리의 대자연은 몇날 며칠 동안 떨고 있었다.

제비는 곡식의 낟알을 먹지 않고 농사에 해로운 벌레들만 잡아먹었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자손이 번성할 징조라고 즐거워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제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제비집도 흔적조차 없었다.

언제부터 찾아오지 않았는지,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다. 그저 논농사 밭농사에 농약을 많이 쓰다 보니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건물들도 현대식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구름처럼 떠돌 뿐이다.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곳에서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오염된 세파를 견디지 못해, 후덕한 농심조차 만날 수 없어 제비가 발길을 돌렸는데도 우리는 회색도시에서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인가. 아름답고 정갈했던 시골풍경, 넉넉한 마음과 행복했던 모습으로 가득했던 그 옛날의 추억을 기억하고 회복하지 않는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아직 우리가 가야 할 초록 들길은 아득할 뿐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