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 사회문화부 차장

계약을 체결할 때 당사자들은 ‘갑’과 ‘을’로 나뉜다. 특히 용역의 경우 ‘갑’은 발주자, ‘을’은 수급자가 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사람의 관계도 ‘갑’과 ‘을’로 빗대 농담처럼 이야기 하곤 한다.

설계변경에 공사비가 반영이 안돼 불이익을 받고 발주처와 갈등으로 업계에서 매장되게 됐다는 A씨의 말을 처음엔 크게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공사비가 2000만원도 안됐고 건설업을 하려면 그 정도 자존심 상하는 일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물론 A씨의 말투에서도 이른바 억센 ‘노가다’의 냄새도 풍겼고 어지간히 험한 말들이 오갔겠구나 지레짐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A씨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주변에서 말리고 가족들도 나서서 큰소리가 날 정도로 만류했다고 했다.

그래서 A씨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물었다. 건설 일을 한지 얼마나 됐고 공사 수주액은 어느 정도인지.
그는 고등학교 다닐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공사일을 배웠고 성인이 된 뒤에는 건설업 면허를 낼 형편이 안돼 남의 일을 맡아 하다가 4년 전에 전문건설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이쯤 되면 A씨는 건설 말고는 할 게 없는 사람이다.
물론 발주처의 말은 많이 달랐다. 150일 공기중 열흘을 남겨두고서야 일을 시작했고 감독관과 감리단과도 갈등을 빚었다고 했다. 오히려 설득해 원만하게 해결하려 했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고도 했다.
A씨의 주장 모두가 사실일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발주처의 말이 모두 정확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불법하도급 문제가 튀어나왔다. A씨가 다른 전문건설업체로부터 일을 받아 하려하자 발주처가 제지했다는 부분.

전문건설업체간 하도급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비일비재하게 관행처럼 굳어져 온 게 사실이다. 문제는 ‘갑’이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 왔고 또 언제든지 문제를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A씨와 발주처의 갈등이 행정과 공사업무를 두고 벌어진 것 이전에 ‘갑’과 ‘을’의 관계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는 아닌지 짚어보고 싶다.
원만히 해결한다는 게 어느 한쪽이 불이익을 감수당하는 게 아니라 서로 협의해 절충점을 찾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사관련 서류 제출을 거부했다는 발주처와 달리 A씨는 공사대금 불이익을 전제로 서류 등에 대해서도 합의된 사항이고 날짜도 소급해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분명 불법하도이긴 하지만 거래처에 A씨에 일을 주지 말고 직접 시공할 것을 주문한 것도 행정행위에 감정이 개입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