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의 ‘매카시 망령’이 횡행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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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의 ‘매카시 망령’이 횡행하는 나라
  • 충청리뷰
  • 승인 200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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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일어 난 해인 1950년 2월, 미국의 웨스트버지니아에서는 한 여성단체가 주최한 연설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연사로 초청된 위스콘신주 출신 조지프 매카시는 갑자기 서류 한 장을 꺼내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이 서류에 공산당원으로 소련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국무부관리 205명의 명단이 들어있습니다.” 일순 장내는 경악으로 뒤덮입니다.

1950년대 전반 5년 동안 전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소위 ‘매카시 광풍’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매카시의원의 손에 치켜 들린 것은 이른바 ‘매카시 리스트’였던 것입니다.
매카시는 일개 초선의원이었지만 그가 폭로한 내용이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그 파문은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당연히 보수적인 언론이 앞장섰고 때를 놓치지 않은 극우 정치인들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곧바로 공직자, 과학자, 교수, 예술가, 심지어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배우 등 진보적인 인사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멍에가 씌워졌고 그들은 추방되거나 투옥되었습니다. 찰리 채프린은 스위스로 쫓겨갔고 원자탄 기밀을 소련에 넘긴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반역죄로 투옥되거나 처형당했습니다.

사실 매카시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군복무 경력을 조작해 가까스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종전과 함께 조성된 미소냉전기류에 편승해 뚜렷한 증거도 없이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반공주의자들의 ‘마녀사냥’에 불을 당겼던 것입니다. 그가 폭탄선언을 하던 날 그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것은 스파이 자료가 아니라 한 병의 버번 위스키였다고 합니다.

결국 전 미국을 들끓게 했던 매카시소동은 애국심으로 포장돼 극우 정치인들의 입지를 넓히고 상업적 신문들의 부수를 늘리는데 공헌하지만 그 실체가 허구임이 드러나면서 국내외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합니다. 기고만장하던 매카시는 54년 군부를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맙니다. 병역사실 조작에 개인비리까지 들통이 난 매카시는 의회의 탄핵을 당하고 57년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불린 매카시즘은 한 시대의 추악한 해프닝으로 끝이 나지만 곧바로 정치 후진국으로 옮겨가 맹위를 떨칩니다. 특히 공산주의와 대치해 전쟁까지 벌인 한국에서는 야당을 탄압하는 무기로 그때마다 정쟁의 올가미가 됩니다.
역대 독재자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대형 용공 조작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문민정부라던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붉은 색깔’씌우기는 ‘원산지’인 미국을 뺨치며 끊임없이 극성을 부립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 59년 조봉암 간첩혐의 사형, 61년 조용수 민족일보사장 간첩혐의 사형을 비롯, 64년 인혁당사건, 68년 동백림사건, 74년 민청학련사건, 79년 남민전사건으로 이어지고 전두환 정권에 들어와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92년 이선실 간첩사건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나같이 반공에 길들여진 국민정서를 업고 야당을 탄압하는데는 그 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들 대부분은 남보다 진보적이라는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의 행적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면서 “북한의 핵심세력이 정부안에 있다”는 한나라당 정형근의원 등의 일련의 발언은 21세기 대명천지의 이 나라에 여전히 매카시즘이 엄존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미국에서조차 용도 폐기 된 매카시즘이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정적을 공격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송교수는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벌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가 정쟁의 대상이 돼서도 안되고 그로 하여 때아닌 용공론으로 국론이 분열돼서도 안 됩니다. 바라건대 세상을 보다 크게 볼 수는 없을까,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과제라 하겠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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