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국장

광장. 광장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와서 대화하고, 공연하고, 쉴 수 있는 광장 말이다. 서울시가 요즘 서울광장 사용허가를 놓고 시민들과 숨바꼭질 하고 있는데, 청주시에는 숨바꼭질할 만한 광장도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있을 때 청주 철당간 앞이나 중앙공원, 혹은 상당공원이 사용됐다. 그래도 가장 넓다는 공공장소가 이 곳 밖에 없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집회 때는 철당간 앞, 5월 27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 때는 상당공원, 6월 10일 6월항쟁 22주년 촛불문화제 때는 중앙공원 식으로 계속 옮겨다니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행사를 ‘나라를 흔드는’ 집회나 시위로 규정하고 광장이 왜 필요하냐고 하겠지만 광장은 의사를 표출하고, 남의 의견을 듣고, 정보를 공유하고, 쉴 수도 있고, 문화공연도 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다.

노 대통령 추모제 때 청주시민 4000여명은 중앙공원에 운집했다.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송곳 꽂을 자리 하나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언제 보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도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는 행정기관에서 아무리 애를 쓰고 동원해도 안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이 날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 중고생들, 어린이들. 권력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평범한 이웃들이 저녁을 일찍 먹고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채 모여든 데는 이유가 있다. ‘서민대통령’ 이미지가 강한 노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시민들은 할 얘기가 많았던 것이다.

부자대통령, 시대를 거꾸로 가는 대통령, 서민은 안중에도 없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울분을 토로하고 노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싶었을 것이다. 노력해도 살기 힘든 이 시대 절망스런 자신들의 처지와 자살한 노 대통령의 처지가 다르지 않으며, 그가 실현시키려 했던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말살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토록 슬퍼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당공원은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촛블을 들 때마다 옆에 서있는 나무들은 여기저리 찌르고, 잔디밭에 엉거주춤 앉아있는 몸은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상당공원은 말 그대로 공원일 뿐이다. 한가롭게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중앙공원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청주시내에도 광장이 필요하다. 청주시 문화동에는 1만6000㎡의 부지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철거해 놓은 곳이 있다. 당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최고 28층의 아파트 498세대를 신축하기로 했으나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해 현재 올스톱 됐다. 이미 지난해부터 폐허처럼 변해 이 곳을 지나는 행인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이런 곳에 청주시민들을 위한 광장이 건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에 ‘땅값이 얼마인데 광장을 짓느냐’는 대답이 날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있다. 대구시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중구 동인2가 금싸라기 땅에 있던 대구지방경찰청과 공무원교육원, 중구청 등 공공기관을 외곽으로 밀어내고 이 곳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만들었다. 3만9600㎡의 부지에 잔디광장과 분수대, 1000여 그루의 나무가 있어 어떤 공원보다 인기를 끈다는 후문이다. 민주주의 시대의 상징인 광장에서 서로 대화하고, 나무를 보며 머리를 식힌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소통을 부르짖는 이 시대, 광장이 있다면 억눌린 가슴들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무조건 막는다고 되는 시대는 아니다. 시민들에게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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