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봉직한 역사교육과 교수들 “몸으로 막겠다”
김 총장 “사태 장기화가 핵심 내가 해결사 역할”

서원대 분규…산 너머 산
오는 9일 사실상 최후진술에 해당하는 ‘청문’ 절차만 남겨놓은 서원학원 이사회가 지난달 18일 김정기 총장을 임명하는 등 배수진을 쳤지만, 서원학원 정상화를 위한 범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등 구성원들의 반발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는 등 반목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범대위는 “이사진 절반의 임기가 만료됐고, 교육과학기술부의 계고기간 중에 친 재단 인사를 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사고 이사회의 ‘긴급의결권’을 폭넓게 인정해준 관례에 해당할 뿐 결코 합법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김 총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김정기 총장이 24년을 봉직한 역사교육과 교수들이 김 총장의 학내 진입을 앞장서 막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역사교육과 교수 5명은 모두 김 총장과 서울대 동문이라 더욱 파장이 클 전망이다. 사진은 정문에 걸린 현수막.
범대위가 김 총장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김 총장이 2000년 3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총장으로 재직하는 과정에서 박인목 재단을 영입하는데 ‘밑돌’을 놓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김 전 총장은 1998년 최완배 전 이사장에 대한 퇴진운동을 벌이는 과정 속에서 교수들의 소개로 박 전 이사장을 알게 됐으며, 총장 임기 내내 박 전 이사장 영입에 공을 들였다. 박 전 이사장은 김 전 총장 퇴임 후 9개월이 지난 2003년 12월 서원학원에 입성했다.

이후 제주교대 총장, 제주교대와 통합한 제주대 부총장 등을 지내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김 총장이 결론적으로 퇴출이 유력해진 박인목 재단에 의해 전격 총장으로 발탁되자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 총장은 “재단문제는 교과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학교 살리기에만 집중하겠다”며 자신이 박인목 구하기에 나선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김 총장은 그러나 “학내 분위기를 알고 있다. 교문에서 막아도 좋다. 학교 상황이 절박하다. 설득해야지 별 수 있겠냐. 학교를 살리러 가는 것이다”라는 지난달 16일 충청리뷰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아직까지 학내 진입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재단은 가도 총장은 남는다’는 충청리뷰 580호(5월22일자)의 관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김정기 총장은 아직 학내에 입성하지 않았지만 모처에서 총장으로서 권한행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최근 재단에 파견돼 있던 고 모씨 등 2명을 대학 내 모처로 발령했다. 김 총장은 1일 지급된 보직수당 및 급양비 보조와 관련해 현금출납서류에 사인했다. 인사발령은 직원인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은데다, 김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는 김 모 보직자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김 총장은 이와 관련해 “학내 분규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학교 밖에서 집무를 하는 것은 관행이다. 결재를 받으러 나에게 오지 않으면 그 자체가 위법 사유에 해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단정했다. 김 총장은 또 “내가 불법 총장이라면서 결국 내가 사인한 수당을 받아가는 것도 모순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른 결재는 그렇다 치더라도 총장이 별도의 출납관을 대행자로 지정하지 않을 경우 자금지출은 전결이 이뤄질 수 없다. 

당분간 이 같은 원격 통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김 총장은 ‘별도의 집무처를 마련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건 알 필요가 없지 않냐”고 잘라 말했다.  

범대위는 이와 관련해 1일 성명서를 내고 “총장직을 맡은지 보름이 지나도록 출근하지 않고 있는 김정기 교수가 교비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보직자를 통해 임기가 끝난 전 이사장의 측근을 간부직원으로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며 “직원인사위원회를 거치지도 않은데다, 인사 담당자도 모르게 결재한 황당한 인사명령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교수회 관계자는 “김 총장이 ‘결재를 받으러 오라’고 압박해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교수회에서는 ‘결재를 받지 말라’고 말렸지만 경리담당자는 수당지급이 일상 업무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처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 재단 고 모씨 대학 내 발령
김 총장 스스로도 학내의 반대정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교과부의 판단은 ‘총장 선임 절차에서 하자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기존 이사 4명이 취소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가 총장을 선임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총장은 물론 후임 이사를 선출할 수도 있다. 분규가 있기 때문에 정황상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할 뿐이지 판례상으로도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김총장 선임과 관련해 범대위가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총장의 출근을 실력으로 저지하는 방법 밖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범대위는 이에 따라 대학본관 앞에 야전사령부 성격의 농성천막을 설치해 놓고 매일 오전 8시 대책회의를 갖는 등 24시간 감시태세에 들어갔다.

범대위 관계자는 “김 총장이 지역 내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신이 앞으로 하게 될 역할에 대해서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 총장이)박 전 이사장에게 ‘20억원을 내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구성원들은 어떤 조치가 이뤄진다 해도 이미 재단이 신뢰를 잃은 만큼 받아들일 여지는 전혀 없다”고 단정했다.

이 관계자는 또 “9일 청문을 거쳐 교과부가 계고했던대로 이사진 전원에 대한 재 승인이 취소된다면 박인목 재단에 대한 ‘원천무효’를 선고받게 된다는 의미인데, 혹여 라도 법정소송 등을 통해 ‘일부 냈던 돈을 찾아가겠다’는 의미라면 애당초 꿈을 접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역사학자인가 총장병 환자인가”
김 총장이 원격 통치가 시작된 가운데 김 총장의 친정(親庭)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교육학과 교수들이 ‘출근은 물론 총장 업무수행을 앞장서 저지하겠다’고 나서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역사교육학과는 1979년 서원대의 전신인 청주사범대학시절부터 지난 2003년 총장 퇴임까지 24년간 몸담았던 곳이다.

역사문제연구소장을 맡는 등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로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온 김 총장이 친정에서 배척을 받는 것은 김 총장 개인은 물론 학계에서도 충분히 파문을 일으킬만한 사건에 해당된다. 더욱이 역사교육학과 소속 5명의 교수는 모두 김 총장과 서울대 동문(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역사교육과)이다.

교수들도 당초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표면에 나서기를 꺼렸으나 현재의 입장은 단호하다. 교문 위에 내건 ‘김정기, 역사학자인가 총장병 환자인가’라는 과격한 현수막의 하단에는 ‘서원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일동’라는 주체가 명시돼 있다.    

역사교육학과 Q교수는 “김 총장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본인은 친 재단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최근 단행한 인사내용만 보더라도 9일 청문에 대비한 포석임이 분명하다. ‘손에 뭘 묻히더라도 우리가 하자’는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교수들은 정문 현수막 외에도 교문에서 대치를 벌일 경우에 대비해 ‘가라 김정기’라고 쓴 ‘손 현수막’까지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하는 동안에는 ‘딜’도 안돼”
김 총장은 구성원들의 허를 찌른 자신의 등장에 대해 ‘해결사’로 나섰음을 거듭 강조했다. 청문 절차 후 관선이사가 들어오더라도 1,2달은 걸릴 것이고, 박 전 이사장이 분명 교과부 상대로 소송을 내면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서원대 사태의 핵심은 장기적으로 간다는 것이다. 박 전 이사장이 소송을 낸다면 ‘최단기간 1년에서 3년은 걸린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판단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딜(협상)’도 이뤄질 수 없다. 그러다보면 서원대는 망한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 총장 자신만이 엉킨 매듭을 풀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 됐든 김 총장이 박인목 재단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총장은 “학원 정상화를 위해 채권을 인수한 현대백화점 그룹 경청호 부회장과 만나볼 생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