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민, 7살 꼬마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계층 참석
뙤약볕에도 미동하지 않는 국민들 보고 ‘가슴 뭉클’

노 대통령 국민장 현장취재기
지난달 29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서울 경복궁에서 엄숙하게 치러졌다. 또 이 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영결식과 노제가 있었다. 이 행사에는 50만명의 인파가 모여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충북에서도 7살 꼬마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청주 상당공원에서는 45인승 버스 2대가 출발했다.

▲ 서울 광장을 가득메운 국민들은 더위와 불편함속에서도 노 대통령의 마지막가는길을 배웅했다. 노제에 참석한 국민은 이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청주 상당공원에서 버스 2대 출발
29일 아침 7시. 상당공원에서는 故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에 참석하기 위해 시민 93명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학교를 결석하고 이유도 모른 채 엄마 손을 잡고 무작정 길을 따라 나선 7살 꼬마는 잠이 덜 깼는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구회정 씨(39·수곡동)는 “옛날로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임금님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순간을 두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학교를 결석시키고 데려왔다”며 “‘옳다’ ‘그르다’는 말 보다는 이런 일이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이명한 씨(32·금천동)는 “유학시절 만난
일본친구들에게 영결식 사진을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9시50분. 서울시청 광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시민들은 훤히 펼쳐진 노란 물결을 보고 흥분 하는 듯 했다. 노제 시작 3시간이 남겨진 상황인데도 시청광장의 녹색잔디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노란색 물결로 넘쳐나고 있었다. 오전인데도 뙤약볕은 대단했다.

▲ 만장을 든 국민들은 태평로에서 운구차를 기다렸으나 결국 반대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헛걸음치고 말았다. 형형색색의 만장은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특별한 소품이었다.
이 뙤약볕 아래서도 자리를 뜨거나 그늘을 찾는 시민은 없었다. 구회정씨도 아이들을 생각할 만한데 그늘 있는 자리는 마다하고 뙤약볕에 서 있었다. 조영주 씨(내덕동·35)는 “대통령이 가시는 길을 함께 하고 싶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을 노 대통령께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비단인줄 몰랐습니다’라는 문구
‘비단을 주웠습니다. 비단인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걸레로 썼습니다’ 기자는 우연히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종이에서 이 문구를 발견했다.

수많은 추모객들의 발에 밟혀 찢겨버린 이 종이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오전 10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30분 앞두고 추모객들은 시청앞 광장 주변으로 무섭게 밀려들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늘어났다.

시청앞 광장은 물론 태평로를 포함해 16차선 도로가 어느새 추모인파로 가득찼다. 수 백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노란색 모자와 풍선을 받아든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 노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내마음속의 대통령'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노란색 모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과 ‘내 마음 속의 대통령 노무현’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원 군(청주교대부설초교·2)은 “‘이분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구나’ 생각했다”며 “이 분 때문에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 같다. 나도 슬프다”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국민장이 경복궁에서 진행 됐다. 영결식은 건물 옥상에 설치된 3개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경복궁 밖에서 이를 지켜 본 추모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는 장면에서는 주변에서 ‘살인자’라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심지어는 입에 담지 못할 욕도 서슴없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함성이 터졌다. 또 권여사와 장남 노건호 씨 등 유족들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는 풍선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국민장이 거의 끝날 무렵, 우연히 들어간 추모공연 출연자 대기실에서 공연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씨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가수 윤도현씨도 넋을 잃은 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김씨에게 한마디 듣고 싶어 인터뷰를 부탁했지만, 김 씨는 정중히 거절했다.
 
대통령 최후 지켜본 시민들
시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움직임도 없이, 숙연하게 서 있었다. 30여분간 진행된 노제 사회를 맡은 도종환 시인은 끝으로 “슬프지만 보내야 할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노 전대통령을 모신 운구차와 유족들의 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수원 연화장으로 갔다. 행렬을 따라가면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 ‘보낼 수 없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노 전대통령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운구 행렬 위로 노란 종이비행기와 풍선이 무수히 날아다녔다.

▲ 권양숙여사와 딸 노정연씨(사진 오른쪽)등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에 참석하기위해 서울광장에 들어서고 있다.
시청앞 광장에 남은 시민들은 ‘사랑으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등의 노래를 연이어 부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노제를 마친 뒤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을 빠져나간 직후 경찰버스가 광장 주변을 다시 에워싸자 시민들은 물병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다.

순식간에 수백명의 시민이 가세했고 경찰버스는 5분 만에 되돌아갔다.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 쪽 대로를 가로막고 경찰과 대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오후 4시10분.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따라 서울역으로 갔던 추모객들이 시청 광장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일터로, 집으로 돌아가서 동료·가족들과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십시오”라고 방송했다. 하지만 수천여명의 시민들은 돌아가지 않고, 경찰에 정면 대응했다.

오후 5시10분. 청주에서 올라온 추모객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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