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집계 1만7000명, 추모인파 ‘인산인해’
‘애통해 어찌 보내나’ 자원봉사·후원물품 답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제가 열린 28일 밤 시민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청주 상당공원에 유례없는 추모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상당공원에는 7시30분 추모제를 앞두고 2,3시간 전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해, 조문행렬이 도청 4거리까지 200m이상 줄을 이었다. 특히 이날 추모제에는 가족단위로 나온 시민들로부터 학교를 마치고 나온 중고생까지 각계각층이 운집했다.

▲ 청주 상당공원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육성준 기자
촛불 점화로 시작된 이날 추모제에서는 추모 묵념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 상영, 이시종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 등의 추모사, 추모 공연, 김창규 시인의 추모시 낭독, 시민들의 자유 발언,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청주대 강혜숙 교수의 살풀이 춤 등이 진행됐다.

▲ 청주대 강혜숙 교수(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가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 육성준 기자
▲ 추모춤(예술극장'두레') 추는 한 무용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육성준 기자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각각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글을 남기기도 하고, 발언대에 올라 서민 대통령이자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끊임없는 사랑을 슬픔으로 토해 냈다.
경찰은 이날 시민추모제에 대해 내심 큰 우려를 했지만 시종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진행됐다.

▲ 민주당 이시종 충북도당 위원장(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석해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 육성준 기자
이시종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은 추모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누구보다 충북을 사랑하고, 충북 발전에 큰 틀을 놓아 준 충북의 명예 도민”이라며 청남대 반환 등 노 전 대통령이 충북을 위해 힘썼던 일들을 일일이 열거한 뒤 “충북도민들은 노 전 대통령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준 엄청난 사업들이 저절로, 당연히 돼야하는 것으로만 알고 바보같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 수업을 마친 중.고생과 가족단위로 나온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영상물을 보며 슬퍼하고 있다. / 육성준 기자
“대통령직을 떠나셨어도 살아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충북인들에게는 의지할 큰 기둥이셨는데, 갑자기 떠나시니 우리는 정말 외로워졌다”며 “당신께서 충북발전에 뿌린 씨앗들이 설령 만고풍상의 시련이 있다한들 결코 헛되지 않도록 저희들이 뒤끝까지 지켜내겠으니 걱정 마시고 더 좋은 세상에서 편히 영면하옵소서”라고 명복을 빌었다.

추모제는 2시간만에 끝났지만 추모물결은 밤새 멈추지 않았다. 주최 측이 집계한 방명록을 기준으로 추산할 때 29일 새벽까지 줄잡아도 1만7000명 정도가 상당공원 분향소를 다녀간 것. 그러나 지역 언론들은 대부분 추모제 인파를 3000~4000명으로 보도했다.

▲ 밤늦은 시각에도 가족단위 추모객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 육성준 기자
▲ 노 전 대통령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상당공원 앞 성안지구대에 조기가 내걸려 있다. / 육성준 기자
청주 노사모 이혜숙 회장은 “보수언론에 의해 너무나 악의적으로 사실이 왜곡되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누누이 강조했음에도 믿지 않더니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서야 진실에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너무나 감사하지만 ‘만시지탄’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추모제의 유례없는 인파는 예견된 것이었다. 상황실 관계자는 “줄이 밀리다보니 2,3명꼴로 방명록을 쓰는 상황이다. 추모제 하루 전인 27일 하루 동안만 7000여명이 방명록을 썼다. 그동안 방명록을 기록한 인원에 2.5배가 다녀간 것으로 볼 때 27일까지 줄잡아도 3만50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23일밤부터 상당공원을 찾은 조문인파만 연인원 5,6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중고생부터 자원봉사 줄이어
상당공원 분향소를 밤낮없이 지킨 것은 노사모와 시민광장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 외에도 중고생부터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가운데는 서너 명씩 짝을 이룬 중고생들도 많았지만 조문을 왔다가 분향소 상황을 보고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를 지원한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분향소 상황실 관계자는 “추모기간 내내 하루 30여명이 고정적으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추모제가 열린 28에는 최소 100여명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8일 새벽 조문을 왔다가 자원봉사를 시작한 신갑순씨는 “서민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분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해드릴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하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분향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29일 새벽까지 24시간 자리를 뜨지 않고 조문객들에게 음료를 접대했다.

레스토랑 요리사인 장수영(남)씨는 업소에 양해를 구하고 봉하마을까지 다녀왔다. 26일 새벽 청주에 도착한 뒤에는 2시간만 눈을 붙이고 손수 아침밥을 지어 영전에 올렸다. “내 손으로 꼭 따뜻한 밥을 올리고 싶었다”는 장씨는 분향소 앞에서 국화꽃을 나눠주면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이혜숙 노사모 회장은 “처음에는 예산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도 빈손이 아니더라. 시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통령의 서거는 너무나 안타까지만 노 전 대통령이 바랐던 시민세상이 이뤄지는 계기가 돼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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