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마을 이장

“OOO 살인마”라고 말하면 ‘유언비어 유포 죄’이니 조심하라 하고 “OOO 멍청이”라고 하면 ‘국가 기밀 누설 죄’이니 말조심하라며 웃던 때가 있었다. 내가 다른 대학생들과 함께 그런 농담을 하며 쓴웃음을 짓던 당시, 실은 엄청난 사건이 조작되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사태가 진행된 것과 진실이 밝혀지는 것 사이엔 너무나 큰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밝혀지는 진실, 당사자는 이미 청춘을 다 지났거나 자식들이 이미 다 자란 시점에 밝혀지는 진실…, 물론 영원히 감추어지는 것보다야 천 배 만 배 낫지만, 그래도, 그래도 ‘때늦은 진실’아, 너는 너무나 야속하구나.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유언비어 유포’, ‘제2의 김대중 내란음모 기도’, ‘전두환 대통령 시해 모의’ … 이것이 그 정치조작의 실체였다. 내가 대학 새내기였던 1981년의 일이다. 그런 사건이 터지면 나는 아무 죄도 없었지만 괜스레 무서웠다. 어디, 나만 그랬는가? 대부분 국민은 그런 사건과 거리를 두려 했고, 동시에 자신도 걸려들지 않기 위해 몸조심, 말조심하며 공포 정치 아래 주눅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 독재 정치, 권력 집단이 정치 공작을 통해 노리는 ‘군기잡기 효과’다.

과연, 위와 같은 엄청난 죄를 범했다고 낙인찍힌 이들은, 정해숙(48ㆍ당시 서울 봉천국교 교사), 황보윤식(33ㆍ대전공고 교사), 박해전(28ㆍ서울 용문중 교사), 김난수(28ㆍ육군 대위), 김창근(27ㆍ천안경찰서 순경), 이재권(26ㆍ금산 신용금고 직원), 김현칠(27ㆍ대전검찰청 직원) 등 7명이었다. 이들은 1982년 2월, 대전지검 1심에서 징역10년에서 2년까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82년 6월, 고등법원은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을 무죄로 판결, 5명에게 징역6년에서 1년 6월을 선고, 2명을 집행유예로 결정했다. 하지만 82년 9월, 고법 판결은 대법원에 의해 파기됐고, 1983년 2월, 고법은 다시 징역10년에서 1년 6월을 선고, 대법원에 의해 형이 확정되었다.

 본인과 가족, 친지, 친구, 동료들의 속을 까맣게 태운, 5번의 긴 재판이 끝난 지 6개월 뒤, 1983년 12월, ‘반국가단체 구성원 5명’은 모두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당사자들은 사회 민주화 투쟁이 어느 정도 진전된 2000년, ‘인생’을 걸고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재심’ 청구 소송이다.

순박하고 건전한 시민이 국가 폭력으로 몸과 마음, 가정과 관계들이 망가지던 시대, 제도적 폭력과 국가적 살인이 공공연하게 일어난 어이없는 때가 바로 1980년대였다. 1981년 5월 17일, 당시 정훈장교로 충남대 대학원에 수학 중이던 김난수 대위의 집에서 딸 아람이의 백일잔치가 열렸다. 고교 동문이나 지인들이 모였다.

결국 ‘아람이 백일잔치 모임(친목 계모임)’이 독재 권력에 의해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로 둔갑하고 말았다. 실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아람회 외에도 부림사건, 오송회, 한울회 등 사건을 조작, 한편으로는 국민을 길들이고 다른 편으로는 권력욕을 정당화했다. 2009년 3월 말의,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살림터)라는 책은 이런 사건들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리고 2009년 5월 21일, 진실이 밝혀졌다. 모두 ‘무죄’다. 무죄에서 무죄로 오는데 무려 28년이 걸렸다. 판사는 “경찰이 박해전 등 아람회 관련자들을 지하 대공분실에 가두고 거꾸로 매달아 놓고 얼굴에 수건을 씌워 물을 붓는 물고문, 차가운 바닥에 앉혀놓고 무릎 사이에 곤봉을 끼우고 깔아뭉개고 4~5명이 달려들어 집단적으로 구타하기 등을 통해 허위진술을 강요하고 유서까지 작성하게 한 것이 인정된다.”고 하며 “선배 법관을 대신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시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고인이 된 이(재권) 씨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평화와 행복을 찾기 바란다.”고 했다.

모든 당사자와 가족은 기립 박수를 치며 진실 앞에 눈물을 흘렸다. 그나마 다행이다.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고 “선배 판사들을 대신해 사과한다.”는 후배 판사(이성호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정직과 용기가 다행스럽다. 고마운 일이다. 원래 사법부란 이래야 한다. 진실을 진실대로 밝히는 것, 이것만이 가장 강한 힘이다.

여기서 배울 점이 있다. 첫째, 최근 촛불 시위 관련자에 대해 엄한 처벌을 지시한 신모 대법관의 사례에서 보듯, 아직도 정치권력과 그 눈치를 보는 자들에 의해 사법 정의가 훼손되고 있다. 다행스런 것은 전국 판사회의가 열리고 탄핵 목소리가 나오는 등, 그래도 진실의 목소리가 죽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재판정에서는 돈과 권력, 혈연 등에 휘둘린 판결이 심심찮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여전하다. 둘째, 사법적 불의나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에 대해 그 가해 행위에 참여한 당사자들(고문 경찰, 검사, 판사, 탐욕 정치가 등)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와 가족의 한을 풀고 상처 치유와 생활 보장을 위해 비록 수백억이 들더라도 그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갚아야 한다. 그 정도 강력한 역사적 처벌이 있어야 비로소 ‘진실 앞에 거짓을 조작하는’ 국가적 폭력 행위가 없어질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도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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