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 아침, 자발적 시민의 손에 의해 상당공원에 차려진 시민합동분향소에 애도의 발길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첫날보다 둘째 날, 그 다음 날,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조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가 검찰에 의해 모욕당하고 언론에 조롱당할 때 돌팔매로 거들던 먹물들과는 달리 민초들은 그것이 보복인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농부의 자식, 고졸 촌뜨기, 바보 노무현을 자신과 같이 생각했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참지도자인 줄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전의 그를 보여주는 동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를 추모하는 글 판에서 그가 사랑한 민초들의 속내를 엿봅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를, 한 시민단체가 준비해 온 뜨거운 국밥과 함께 삼킵니다. 준비한 초가 동이 났다지만 그렇다고 촛불이 꺼지기야 하겠습니까. 초가 없으면 횃불을 밝히지!

쉼 없이 돌아가는 추모영상을 보면서, 대통령후보자초청TV토론회에서 처음 그를 대면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후보자시절에는 청남대를 돌려주겠다고 공약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당신도 그럴 것 아니냐"는 힐난조 질문에 그의 답변은 분명했고, 꽃피는 춘삼월에 조건없이 청남대는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보 노무현은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정치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스스로 버린 첫 번째 대통령입니다. 그는 당정을 분리하여 국회가 청와대의 시녀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거부했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권력기관들의 칼을 불에 녹여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물러난 지금 어떻습니까. 박물관으로 간 줄 알았던 국가보안법은 피묻은 칼날을 다시 뽑아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아 공안정국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소통은커녕 생리적으로 반대자체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민자 유치로 하겠다던 대운하,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던 운하는 4대강 살리기라는 얄팍한 겉포장으로 눈가림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옳다는 확신이 있어도 다수 국민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바꿔야 옳지 않겠습니까. 하도 여러가지 현안이 걸려 있으니 일일이 거론키도 어렵습니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 앞에 모여드는 건국 이래 최대라는 조문 행렬의 의미를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정권의 국정기조를 바꿔야 합니다. 다들 알잖습니까. 공권력에 의지하는 공안정치의 끝은 너무나 뻔합니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는 말을 믿을 국민은 더 이상 없습니다. 국정의 일대전환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에 지난 촛불시위 때처럼 강경진압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원천봉쇄만 믿다가는 머잖아 큰 위기에 봉착하리라는 것은 한두 사람의 기우가 아닙니다.

청주의 시민사회는 28일 저녁 7시 상당공원에 마련한 시민합동분향소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를 지냅니다. 그가 탄핵 당했을 때 들었던 촛불이 미국쇠고기반대 촛불로 이어지고, 이제 다시 그를 추모하는 촛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던져 새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그는 우리들의 영원한 촛불입니다. 우리가 그 촛불을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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