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종 청주 삶터교회 목사

온 나라가 놀랄 그분이 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어 밀려드는 슬픔 앞에서 그게 그저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어내기까지는 파렴치함의 극을 달리고 있는 이 나라의 정치상황 앞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온 국민에게 지금까지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는 또 어찌 살 것이냐고 묻는 그분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듣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죽음을 모릅니다.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의 자리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죽음의 성격은 두 가지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이 절망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의 끝이라는 단편적인 이해입니다.

그런 내게 지금 떠오르는 한 마디의 오래 묵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해의 시 한 구절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 오래 전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를 묻게 한 말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는 그 구절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는데, 극단적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그분이 남긴 말,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만해의 시 구절과 같은 뜻을 지닌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의 상황 앞에서 나처럼 부끄러워도 하고 슬퍼도 한다는 것, 지금 우리는 틀림없이 이 부끄러움의 현장을 피할 수 없이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 부끄러운 자리는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절대다수의 국민이 선거 때 표나 찍는 기계로 전락하고, 선거가 끝나면 그 절대다수의 국민은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상황, 그러면서 정치인들끼리는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국민들에게는 재갈을 물리거나 속이는 정치적 행태들과 연관이 적지 않다는 것.

여기서 나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또 하나의 꿈을 꿉니다. 패권주의에서 나오는 집단의 광기가 번뜩이는 이 삭막하고 위태로운 마당에서 새로운 정치상황이 열리는, 그래서 정치인은 국민의 착한 심부름꾼이고 그 정치를 통해 높은 것은 눌러 낮추고 주저물러 앉는 것은 보듬고 일으켜 세워 화합과 상생을 이루는 세상, 그리고 지금의 이 상황이 저기서 여기로 나아가는 길목이 된다면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만해의 노래가 구체적 현실로 쉽게 이해될 수 있겠다는.

지금은 부끄러워할 때, 지금은 슬퍼할 때, 그러나 이것이 단지 그렇기만 할 일은 아니고, 이것을 승화시켜 밝고 고운 미래를 여는 문고리로 삼는 슬기가 우리에게 또한 필요할 때라는 것을 헤아리며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내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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